[의료대란]정부-의사-약사 엇갈린 목소리

  • 입력 2000년 6월 20일 19시 10분


▼청와대 "협상은 하되 원칙 양보없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20일 의료계의 집단폐업에 대해 ‘원칙있는 대처’를 내각에 주문한 것은 협상은 해나가되 더 이상 밀려서는 안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김대통령은 집단폐업사태가 국민 생명을 담보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못마땅해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통령이 20일 국무회의에서 “세계적으로 의약 분규는 있지만 환자 생명을 담보로 해서 폐업으로 대처한 예는 없다”고 지적한데서도 그런 심경이 드러난다.

김대통령은 또 “이런 식이면 국정을 해나갈 수 없다”고 했는데 이 말은 이번 사태를 ‘기득권 세력의 집단저항’으로 보고 강력한 개혁의 연장선상에서 대처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관계자들도 7월1일부터 일단 시행해본 뒤 3개월동안의 검증기간을 거쳐 제도를 보완하자는 ‘선(先)시행 후(後)보완’의 원칙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여기에는 △의료계가 의약분업에 합의해놓고도 번복했고 △전혀 타협의 여지를 남기지 않고 있다는 데 대한 불만도 깔려 있다.

그러나 청와대 방침이 강경 일변도만은 아니다. 김유배(金有培)대통령복지노동수석비서관은 “이번 사안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것이기 때문에 정부가 물리력을 행사하게 되면 어느 방향으로 사태가 튈지 모른다”며 “신중하게 다뤄야할 문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청와대는 또 전문의 양성제도 개선, 의과대학 지원, 의료인프라 확충 등 의료계가 요구하고 있는 제도적 개선에 대해서도 개혁차원에서 적극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최영묵기자>ymook@donga.com

▼의사협회 "정부와 대화 재개" 다소 유연▼

집단폐업 첫날을 강경한 자세로 임했던 대한의사협회는 20일 환자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고 시민들의 항의가 계속되면서 오후에는 정부와의 대화재개를 선언하는 등 다소 누그러진 태도를 보였다.

의협 조상덕공보이사는 이날 “의협이 자체적으로 마련한 의약분업 연구안을 바탕으로 보건복지부와 대화에 나설 계획”이라며 그러나 대화 창구를 열었을 뿐 폐업은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의협의 이같은 자세는 전날 ‘정부와 대화하지 않겠다’는 태도에서 한발 나아간 것이어서 사태의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섞인 기대가 나오고 있다. 영남대병원과 인천 서현산부인과에서 환자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의쟁투 관계자들은 임시로 마련된 기자실을 찾아 “무척 안타깝지만 폐업 사태가 없었어도 사망했을 것”이라며 사망과 폐업을 연계시키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도 보였다.

한편 서울경기지역전공의협의회는 이날 오후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80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집회를 열고 “보험수가 50% 지원과 임의조제 금지 등의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아 불가피하게 집단 폐업에 들어갔다”면서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의사들의 행동을 이해해 달라”고 호소.

또 전국 41개대 의대생들로 구성된 전국의과대학 의약분업비상대책위원회도 이날 오전 서울대병원 지하강당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올바른 의료환경을 얻어내기 위해 전국 2만여 의대생들이 동맹휴업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인지역 의대생 6000여명은 서울 종묘공원에서 올바른 의약분업을 위한 전국 의대생 동맹휴업 결의대회를 갖고 대학로까지 행진을 벌였다.

<정용관기자>yongari@donga.com

▼약사회 "원칙 깬 분업 수용못한다"▼

약사회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20일 오후2시부터 열린 대한약사회 중앙이사회는 정부와 대한약사회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전국 200여명의 약사들이 모인 이 자리에서는 “주사제가 제외되는 의약분업이 제대로 시행되겠느냐” “원칙이 훼손된 의약분업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는 등의 포문이 터졌다. “원칙만 공언하던 약사회 집행부는 무엇을 했느냐”는 비난도 쏟아져 나왔다. 묵묵히 의약분업 준비에 몰두해온 약사들이 격앙된 것은 18일 정부가 의약분업 대상에서 주사제와 희귀의약품 1600여종을 사실상 제외하면서부터.

대한약사회는 이날 상임이사 전원이 총사퇴를 결의하고 “정부가 제대로 된 의약분업을 실시하지 않을 경우 손해배상 소송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약사회는 19일 성명을 내고 주사제 남용을 방치한 보건복지부장관의 사퇴를 요구하며 “의약분업안이 원상회복되지 않을 경우 의약분업에 참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한나라당에서 ‘의약분업 6개월 연기론’을 제기하자 항의 방문을 위해 모인 전국시도지부장들은 20일 성명을 내고 정부에 대해 △의약분업기본원칙 준수 △분업전 약국에 처방약 공급 등 특단의 조치 강구를, 의료계에는 △폐업 중단과 의약분업 동참을 요구하고 이 과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분업에 동참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약사회 박인춘(朴仁椿)홍보이사는 “약국들은 의약분업에 대비해 매장 확대와 약품구입 및 관리프로그램 마련 등에 이미 수천만원씩을 들인 터라 분업 불참결정이 쉬운 일은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회원들이 급격히 집행부 통제에서 벗어나고 있다”고 우려했다.

<서영아기자>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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