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취득 수표-현금 은행 돈세탁 거쳐도 장물"

  • 입력 2000년 3월 15일 19시 21분


범죄행위로 부당하게 얻은 자기앞수표와 현금(장물)을 은행에 예금했다가 찾았다면 그 돈은 장물일까, 아닐까.

장물은 절도 사기 횡령 등 재산범죄로 취득한 물건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 처분 대가는 장물성을 상실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다. 따라서 훔친 자전거를 팔아서 받은 돈인 걸 알면서 보관해줘도 그 돈은 이미 장물이 아니기 때문에 장물보관죄로 처벌받지 않는다.

대법원 형사3부(주심 송진훈·宋鎭勳 대법관)는 15일 장물 취득 및 보관 혐의로 기소됐으나 2심에서 “예금했다 찾은 돈은 장물이 아니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은 강모씨(45·여)와 박모씨(41)에 대한 상고심에서 “그렇지 않다”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돈은 고도의 대체성이 있어 표시된 금액에 따른 금전적 가치가 거래상 의미를 가지는 것”이라며 “장물인 자기앞수표와 현금을 예금했다가 찾으면 물리적인 동일성은 없어지지만 금전적 가치는 똑같기 때문에 장물성이 그대로 유지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사기로 얻은 부정한 돈이 예금됐다가 인출된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돈은 이미 장물이 아닌 만큼 장물 취득이나 보관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원심 판결은 법리를 오해한 잘못된 판단”이라고 덧붙였다.

강씨와 박씨는 조카사위와 친구뻘인 성모씨(43)가 96년 회사 어음을 사기로 할인받아 챙긴 자기앞수표와 현금 7억여원을 은행에 넣었다가 꺼낸 돈 중에서 각각 7000만원과 1억1500만원을 받거나 보관해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는 유죄, 2심에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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