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앞둔 대학街, 예전보다 '조용∼'

  • 입력 2000년 2월 23일 19시 12분


대학가가 조용하다. 매번 총선 때마다 거리로 뛰쳐나와 강경투쟁을 벌이던 것과는 크게 대조적이다. 시민단체들이 공천반대명단 공개 등으로 일찌감치 총선정국의 주요변수로 떠오른 점을 감안하면 유례가 드문 ‘잠복기’인 셈. 총선에 관심을 보이는 대학생층도 ‘총학생회의 투쟁’보다는 ‘시민단체의 정치개혁운동’에 더 큰 성원을 보내고 있는 형편이다.

▼ 96년엔 與후보 낙선운동 ▼

92년 14대총선 때 한총련의 전신 전대협 등 학생운동권이 지원했던 후보는 50여명. 광주에서는 민자당 지구당 사무실을 습격하는 등 과격한 운동을 펼쳤다. 96년 15대총선 때 학생운동권이 지원한 후보는 6명뿐이었지만 한총련은 신한국당후보 41명의 실명을 거론하며 낙선운동을 전국적으로 벌였다.

하지만 선거가 불과 1달여 앞으로 다가온 이번 16대 총선에서 운동권의 구체적인 움직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지난달 27일 서울역에서 총선시민연대가 주최한 ‘국민주권선언의 날’ 집회에 한총련학생 500여명 나타난 것이 고작이다. 이때도 학생들은 총선과 상관없는 ‘미국반대’ ‘국가보안법철폐’ ‘정권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다 총선연대측으로부터 “집회와 관계없는 구호나 유인물 배포를 즉각 중지해달라”는 요청을 받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 시민단체에 주도권 잃어 ▼

이렇게 학생운동권이 총선에 소극적인 이유는 표면적으로는 최근 본격화한 등록금인상 반대투쟁 때문. 지난달 각 사립대가 등록금을 대폭 인상할 방침을 밝히자 이에 대한 투쟁 때문에 총선이 뒷전으로 밀렸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민주-반민주 구도의 소멸’과 ‘학생운동의 역량 약화로 인한 주도권 상실’ 등 두가지 분석이 더 유력하다. ‘민주-반민주 대립구도’에서 전통적으로 야당을 지지하며 명분을 쌓았던 한총련 주류계열의 경우 ‘여야가 뒤바뀐’ 현 정국에서 뚜렷한 지지후보를 찾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또 서울대에 최초로 비운동권 총학생회가 들어서는 등 과격한 학생운동이 학생들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는 것도 한 이유. 정치에 관심을 보이는 젊은층은 운동권보다 사이버공간을 통한 정치참여에 더 관심이 크다.

여기에다 대학생들의 인식이 보다 현실화되고 성숙해지는 등 뚜렷한 의식의 변화로 과격한 운동권의 입지가 축소된 것이 결정적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

▼ 학생들 과격운동권 외면 ▼

서울대 장형수씨(23·경제학부 3년)는 “더 이상 민주정부 수립이나 민중후보 지지 같은 추상적 구호는 학생들에게 먹히지 않는다”며 “대학생들끼리 마음에 맞는 후보를 돕거나 시민단체에 성금을 보내기는 해도 학생회 단위의 집단적 정치투쟁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조차 과격 학생운동권의 선거운동 참여를 달갑지 않게 여기는 기색이 역력하다. 총선연대의 한 관계자는 “학생들이 시대의 변화를 제대로 읽지 못해 운동진영에서의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했다”며 “시민의 뜻과 거리가 있는 과격한 정치투쟁은 이번 총선에서 절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한총련 주류계열은 총선투쟁본부를 꾸리겠다는 방침 외에 구체적인 활동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있고 고려대 연세대 등 민중민주(PD)계열도 “진보정당 후보와 연대하겠다”는 원칙만 밝힌 상태. 또 비운동권이 장악한 서울대 총학생회는 지난달 ‘전통적인 선거투쟁’을 지양하고 아예 시민단체의 후보자 정보공개운동을 적극 지지하겠다고 나섰다.

이에 대해 서강대 손호철(孫浩哲)교수는 “학생운동이 70, 80년대 운동을 주도한 것은 시민운동이나 노동운동 등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사회적 특성 때문이었다”면서 “부문운동이 활발해진 90년대 후반 이후 학생운동권이 정치분야에서 쇠퇴해 가는 것은 시대의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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