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선거법 단속기준 발표]시민단체-검찰 신경전

  • 입력 2000년 2월 16일 19시 32분


새 선거법이라는 정해진 ‘룰’을 놓고 시민단체와 검찰의 한바탕 ‘신경전’이 벌어질 전망이다. 총선시민연대 백승헌(白承憲)대변인은 16일 검찰의 불법 선거운동 엄단방침에 대해 합법운동을 하되 선거법을 ‘글자 그대로’ 따르지는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가장 큰 이유는 새 선거법이 시민단체의 총선관련 시민운동을 일부 허용했으나 낙선 낙천운동의 실질적 수단은 철저히 묶어 놓았기 때문. 전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언론기관이나 인터넷에 낙천 낙선자 명단을 발표하는 것은 합법이고 같은 명단을 거리에서 수백명의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거나 서명받는 행위는 불법이라는 기묘한 상황이 벌어질 수 밖에 없다.

또 선거운동 기간중 도로 등에서 유권자들을 1대1로 접촉해 권유하거나 전화를 걸면 합법이지만 같은 이야기를 확성기로 하거나 집을 방문해서 전하면 불법인 셈. 결국 법대로라면 시민단체원들은 삼삼오오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거나 전화기와 컴퓨터 앞에만 앉아 성명이나 발표하는 것에 그칠 수 밖에 없다.

박철준(朴澈俊)대검 공안2과장은 이에 대해 “낙천 낙선 대상자 명단을 발표하는 것은 의견표명이지만 이 명단을 유권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선거운동이므로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날 전국 검찰청에 시민단체 단속 지침을 내려보냈지만 검찰과 시민단체와의 ‘신경전’이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그리 높지 않아 보인다. 양측이 상대측의 입장 등을 감안해 가능한 충돌을 피하려는 입장이기 때문.

총선연대의 관계자는 “실정법을 지켜야 하는 검찰의 입장도 이해할만 하기 때문에 대규모 충돌을 피하는 묘안을 고심중”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검찰도 설혹 시민단체의 불법행위가 있더라도 바로 칼을 뽑기보다 여론의 동향을 보아가며 본격적인 수사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법조계에서는 정치권이 시민단체의 요구를 무시하고 당리당략적으로 법을 개정해 이같은 상황을 초래했다는 비난이 많다. 김종훈(金宗勳)변호사는 “법률적으로 이번 선거법은 현실을 전혀 무시한 누더기 법안”이라며 “법을 새로 제정하는 차원에서 선거법을 전면 재개정해야 본질적인 문제가 풀릴 것”이라고 말했다.

<신석호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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