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 이종왕 사의]박주선씨 처리로 수뇌부와 갈등

  • 입력 1999년 12월 19일 19시 44분


박주선(朴柱宣)전청와대 법무비서관의 소환 및 사법처리문제에 대한 갈등으로 16일 사의를 표명했던 이종왕(李鍾旺·50)대검수사기획관이 정식으로 사직서를 제출하고 3일째 출근을 하지 않아 그의 진퇴에 검찰 안팎의 시선이 쏠려있다.

▼ 선후배 신망 두터워 ▼

검찰수뇌부는 “복귀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사표수리를 유보한 상태이나 이기획관은 “공직자로서 처신이 분명해야 한다”며 복귀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어 복귀여부는 여전히 미지수다.

박순용(朴舜用)검찰총장의 수습노력에도 불구하고 그의 중도퇴진이 현실화될 경우 검찰조직은 또한번 크게 동요하며 소장검사들의 ‘사표사태’ 등 집단행동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박검찰총장이 19일 검찰내부에 함구령을 내린 것도 이런 긴박한 분위기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이같은 조짐의 배경엔 검찰내부에 ‘이번 만은 진상을 밝혀 검찰이 거듭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절박한 분위기가 깔려있다.

‘신중했어야 한다’는 비판론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검찰내부 통신망에 이기획관을 지지하는 글이 게재될 만큼 그에게 동조하는 분위기가 점차 확산되는 분위기다.

이종왕검사는 선후배간에 신망이 두텁고 일처리에 있어 신중하고 깐깐하기로 정평이 나있다.

그의 원칙적이고 바른 성격을 나타내는 최근의 일화. 검찰의 고위간부가 김대중(金大中)대통령 1만달러 수수사건과 관련해 대검의 검사장급 이하 과장급 이상 간부들을 모아 의견을 수렴하는 자리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통령에게도 억울한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조선시대 왕들이 ‘당대의 사초(史草)를 보지 않는 점을 되새겨 보아야 한다. 대통령의 한을 풀어주는 수사를 검찰이 해보아야 이미 믿는 사람들은 ‘그러면 그렇지’라고 넘어가겠지만 그렇지 않은 많은 사람은 ‘검찰이 10년전 사건을 또다시 조작했다’고 반발할 것이다.”

▼ 총장 새벽까지 설득 ▼

그는 21세기를 코앞에 둔 시점에서 상생(相生)은 못할망정 모두에게 피해만 안길 소모적인 수사를 해서는 안된다고 직언했다. 나름대로의 소신을 뚜렷이 밝힌 것이다.

그는 TK(대구 경북)출신이다. 그럼에도 PK(부산 경남)정권 시절 김영삼(金泳三)대통령의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차원에서 단행된 전두환(全斗煥) 노태우(盧泰愚)두 전직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잘못된 것이라는 소신을 피력하기도 했다. 당시로서는 그같은 발언 자체가 상당한 오해를 불러올 수도 있는 일이었다.

이검사는 일에 관해서는 지독한 검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입버릇처럼 “검사들이 고시에 합격하고 난 뒤에는 육법전서를 들춰보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냥 선배들이 해온 대로 잘못된 관행을 답습하는 것에 대해 “‘법률가’들이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곧잘 해왔다.

▼ '연판장 소동' 가능성 ▼

이검사는 검찰에서 보기 드문 ‘선비형 검사’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지금은 절판이 된 ‘임금님들께 보내는 상소’라는 20여년전에 나온 책을 매일 읽는다. 어디로 임지를 옮겨가더라도 이 책을 항상 갖고 다닌다. 그는 매일 이 책을 한 구절이라도 읽으면서 ‘윗사람’에게 ‘목숨을 걸고’ 상소(上疏)’를 해왔던 선인(先人)들의 지혜를 되새긴다고 한다.

박검찰총장은 이검사를 19일 새벽 자신의 집으로 불렀다. 그리고 4시간이 넘게 “왜 사표를 냈느냐. 철회하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이검사는 “총장의 지휘권에 누를 끼쳤습니다.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라는 말만 하며 소신을 고집했다고 한다.

검찰내부에는 현재 그의 사의표명에 술렁거리는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 일부 검사들은 “이종왕이 옷을 벗으면 나도 더 이상 검찰에 몸을 담고 싶지 않다” “그를 놓쳐서는 안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검사 이종왕’의 진퇴여부에 따라 검찰조직이 또한번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휘말리면서 자칫하면 ‘대전연판장 소동’이 재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영훈기자〉c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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