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서유출 수사]'거짓말 게임' 누구말이 맞나

  • 입력 1999년 12월 13일 20시 25분


각양각색의 거짓말 게임으로 변질돼 버린 ‘옷 로비 의혹 사건’이 마지막 거짓말 승부를 벌이고 있다.

그 사활(死活)을 건 한판 승부의 주인공은 박주선(朴柱宣)전대통령법무비서관과 사직동팀장인 최광식(崔光植·총경)경찰청 조사과장.

이들은 ‘최초보고서’의 작성과 유출경위를 놓고 5일 새벽 1차, 12일 오후 2차 대질신문을 가졌다. 최과장은 “사직동팀에서 최초보고서의 3개 문건을 작성했으며 모두 박전비서관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했고 박전비서관은 “최초보고서는 본 적도 없다”며 맞섰다. ‘심판관’격인 검찰은 승패를 가리지 않고 두 사람을 모두 귀가시켰다.

▼'사전입맙춤' 깨진듯▼

11월22일 배정숙(裵貞淑)씨측이 ‘최초보고서’를 공개했을 당시 ‘한 솥밥’을 먹는 사이였던 두 사람은 “최초보고서는 없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전비서관이 11월29일, 최과장이 12월1일 특별검사에 나가 똑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그 때 이미 두 사람은 미세한 부분에서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최과장은 특별검사 조사후 취재진에게 “최종보고서의 ‘7항 건의’를 넣어서 박전비서관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그러나 박전비서관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사결과 보고서의 서툰 문구와 문서체계를 손질하고 ‘건의’항목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검찰조사가 본격화하면서 최과장은 ‘최초보고서가 없다’는 자신의 종전 주장이 거짓말이었음을 털어놓았다. 사직동팀에서 최초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을 인정한 것. 다른 사직동팀 관계자 4명도 일관되게 같은 진술을 했다.

▼사직동팀 믿는 분위기▼

이종왕(李鍾旺)대검 수사기획관은 12일 밤 “최과장이 왜 말을 바꿨느냐”는 질문에 “나중에 설명하겠다”고 말했다.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다는 뉘앙스다. 따라서 검찰 주변에서 박전비서관과 최과장간의 ‘사전 입맞춤’이 어떤 이유에서 깨진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박전비서관은 이에 대해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는 최근 “최과장이 경무관 승진에서 탈락했는데 그 자리에 내 동기동창이 갔다. 그 영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만일 ‘최초보고서’가 사직동팀에서 만들어진 것이 맞는다면 그들은 그 유출 책임을 나에게 떠넘겨야 살아남는다”고도 했다. 즉 ‘법무비서관’이라는 끈이 떨어진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

▼"끈떨어져 희생양 돼"▼

그러나 수사팀은 박전비서관보다 사직동팀에 무게를 실어주는 분위기다. 한 수사검사는 “최과장 등 사직동팀 관계자들은 보고서를 언제 어떻게 보고했는지를 상세히 진술하고 있지만 박전비서관은 그냥 딱 잡아떼고만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수사팀이 섣불리 판정을 내리지 않고 숨 고르기를 하고 있는 것은 김태정(金泰政)전법무부장관의 굳게 닫혀 있는 입 때문이다. 김전장관이 의외의 사실을 털어놓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무 위의 감이 다 익어가고 있다. 서둘러 따기보다는 저절로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검찰관계자의 말에서 수사팀의 여유있는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부형권기자〉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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