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이회창-홍석현 밀약說' 쟁점화

  • 입력 1999년 10월 7일 23시 31분


국민회의가 6일 중앙일보에 보낸 공개질의서에서 97년 대선 때 ‘이회창(李會昌)대통령―홍석현(洪錫炫)국무총리 밀약설’이 있었다는 의혹을 제기하자 한나라당이 7일 “터무니 없는 모함”이라며 증거제시를 요구하고 나서 이 문제가 정치쟁점으로 떠올랐다.

여야 3당 총무는 이날 국정감사가 끝나는 18일 이후의 국회일정을 논의하기 위해 회담을 가졌으나 한나라당 이부영(李富榮)총무가 대선밀약설에 대한 선(先)해명을 요구해 회담이 결렬됐다.

‘이총재―홍사장 밀약설’은 97년 대선에서 양측이 협조해 이총재가 대통령에 당선될 경우 중앙일보 홍석현사장이 총리를 맡기로 밀약을 했다는 설로 그동안 정가 안팎에서 풍문수준으로 떠돌았던 얘기.

한나라당은 이 밀약설이 국민회의에 의해 ‘공론화’되자 국민회의가 이를 입증할 증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강력히 대처하기로 했다.

그러나 국민회의는 “입증할 만한 증거를 이미 확보했다”는 얘기를 흘리면서도 공식 대응은 피했다.

한나라당 이총무는 이날 주요당직자회의에서 “국민회의가 엉뚱한 유언비어를 유포하고 나선 것은 묵과할 수 없는 한심한 작태”라며 “국민회의는 ‘중앙일보 안에 그런 문서가 있었다’는 식으로 흘리지만 말고 문서를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장광근(張光根)부대변인도 논평에서 “집권여당이 있지도 않은 얘기로 유언비어를 만드는 것은 명백한 명예훼손”이라고 비난했다.

한나라당 내에서는 이날 여권이 증거를 내놓지 못할 경우 국정감사 이후의 국회일정에 합의해주지 말고 명예훼손 혐의로 고발해야 한다는 강경론까지 대두됐다.

한나라당이 이처럼 강력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은 여권이 언론탄압 공방을 희석시키고 한나라당의 주장을 일방적인 중앙일보 편들기로 몰아가기 위해 ‘밀약설’을 제기했다고 보기 때문.

국민회의는 일단 대응을 삼간 채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밀약설’이 한나라당과 중앙일보의 유착관계를 부각시킬 수 있는 호재라는 판단 아래 야당과 중앙일보가 이 문제를 계속 제기하면 정면 대응한다는 방침을 세워놓았다는 게 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한 당직자는 “중앙일보의 대응을 지켜본 뒤 ‘밀약설’과 관련한 추가 대응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과 중앙일보의 향후 태도에 따라 증거 공개 등 대응수위를 정하겠다는 것.

국민회의가 이처럼 느긋한 자세를 보이는 것은 이총재와 홍사장의 ‘밀약설’이 부각될수록 ‘중앙일보의 이회창후보 편파 지지’가 공론화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인 듯하다.

또 국민회의가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밀약설’을 입증할 만한 단서를 확보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민회의의 한 고위관계자는 “나도 당국이 이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를 입수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차수·양기대기자〉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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