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정치적 중립화」논의확산…개혁수위 저울질 한창

  • 입력 1999년 1월 31일 20시 36분


심재륜(沈在淪)대구고검장의 항명(抗命)사건 이후 검찰의 정치적 중립화를 위한 논의가 안팎에서 더욱 거세져 법무부가 고뇌를 거듭하고 있다.

검찰의 중립성에 대한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고등검사장이 수뇌부를 향해 직격탄을 날린 것은 사상 처음있는 일. 변호사의 수임비리로 시작됐던 이종기(李宗基)변호사 사건은 판검사의 비리로 확대됐다가 심고검장 파동 이후 검찰의 정치시녀화 문제로 번지고 시민단체의 시위까지 촉발하는 상황으로 증폭되고 말았다.

검찰 수뇌부는 개혁방안의 내용에 대해 일단 ‘노코멘트’로 일관하고 있지만 바깥의 요구를 어느 선까지 담을지를 놓고 저울질을 거듭하고 있다. 향응과 전별금 또는 떡값에 대한 잘못된 관행을 혁파하겠다는 의지는 강력히 내비치면서도 정치검찰의 문제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검찰 수뇌부는 심고검장의 부도덕성을 애써 부각시켜 ‘물타기’를 시도하는 인상이다.

검찰의 한 간부는 “비리혐의를 받고 있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할 수 없으며 ‘정치시녀화’에 관해서는 그 자신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깎아내렸다.

그러나 이번 기회에 정치검찰 문제를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대한변호사협회와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도 심고검장 사건 이후 곧바로 성명을 내고 “심고검장의 동기야 어쨌든 권력에 순치돼온 검찰을 전면적으로 개혁해야한다는 취지에는 공감한다”고 밝혔다.

정권이 바뀌어도 되풀이해서 불거지는 ‘정치시녀화’ 문제는 결국 인사문제에 가장 큰 원인이 있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

총장을 피라미드의 정점으로 하는 검찰의 인사체계상 검사들의 줄대기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 특히 검사장급 이상의 검찰고위간부 인선에는 권력층의 입김이 절대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정치사건 처리에 있어 권력에 좌우되기 쉽다는 것이다.

고위층의 줄대기는 결국 연쇄반응으로 차장 부장을 비롯해 일선검사들까지 로비에 뛰어들어 ‘정치검사화’를 부추기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검사출신의 한 변호사는 “총장을 정점으로 하는 피라미드형의 검찰 인력구조를 지방검찰청의 자치화 등을 통해 사다리형으로 바꾸는 등 대폭적인 인사개혁을 모색해야한다”고 말했다.

검찰총장 임기제나 인사청문회 등도 전체적인 인사구조의 개혁을 통해야만 효과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당장 대폭적인 인적 청산이 이뤄져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변협의 한 간부는 “오랜 기간 권력에 가까이 했던 현재의 검찰 간부들은 권력의 지시가 없어도 스스로 영합하는 측면이 강하다”며 “이는 제도적 문제보다는 사람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즉 권력에 민감한 수뇌부가 ‘알아서 기는’ 현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개혁 의지를 갖고 있는 인사로 대폭적인 물갈이를 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총장의 명령대로움직이는중수부를없애야 ‘정치화’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주장도 여러차례 제기돼 왔다. 제한적으로나마 검찰 내에 상명하복에서 벗어난 제도를 운영해볼 필요가 있다는 제안도 있다.

최근 일련의 사태를 둘러싸고 법무부와 검찰이 대처에 있어서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는 점도 개혁방안의 성안과 관련해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우선 인사문제에 대해 검찰은 빨리, 법무부는 다소 늦게 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또 심고검장의 징계에 대해서도 검찰은 무조건 면직, 법무부는 무조건 면직은 아니다는 입장. 이는 법무부가 대검의 최근 몇가지 실수, 예컨대 국회정보위 사무실 강제진입 대처라든지 항명유발같은 문제를 심각하게 보고 있기 때문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런 요인들이 개혁방안에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서정보기자〉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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