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학협동 「고리」가 끊어진다…기업 R&D투자 급감

  • 입력 1998년 11월 19일 19시 47분


차세대 위성통신 기지국에 쓰이는 ‘스마트 안테나’를 연구해온 한양대 최승원(崔勝元·전자통신공학과)교수. 그는 최근 자신의 연구를 지원키로 했던 대기업 S사로부터 계약 직전에 ‘없었던 일로 하자’는 내용의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단 하나. ‘당장 돈이 안된다’는 것.

스마트 안테나는 위성을 이용한 휴대전화 기지국을 세우는 데 필요한 핵심 기술로 미국 일본을 비롯해 해외에서도 개발 열기가 뜨거운 첨단 분야.

최교수는 “10년간 공을 들인 끝에 이제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는데 몹시 안타깝다”고 아쉬움을 표시. 이 기술이 국내에서 개발되지 않을 경우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방식처럼 매년 막대한 기술사용료(로열티)를 해외에 지불해야 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최교수는 결국 중소 벤처기업인 H사와 정부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계속하기로 했지만 총 10억원이 넘는 연구비를 H사가 감당하기에는 벅찬 게 현실.

국제통화기금(IMF) 한파로 기업의 연구개발(R&D) 투자가 줄어들면서 캠퍼스의 연구 열기가 급속도로 냉각되고 있다. 올들어 새로 시작된 산학(産學) 프로젝트는 사실상 거의 전멸 상태. 기존의 프로젝트도 추가 지원은 커녕 규모를 대폭 줄이고 있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최근 프로젝트가 도중에 중단되면서 이미 지급받은 연구비를 다시 회수당하기도 했다.

포항공대와 공동으로 차세대 반도체 제조기술인 ‘X선 노광 기술’을 개발하는 등 산학 프로젝트로 재미를 봤던 LG반도체도 올들어 신규 프로젝트는 단 한건도 없다. LG측은 “기존의 프로젝트도 줄여가는 마당에 1,2년내에 당장 상품화가 안되는 기술은 지원할 엄두도 못낸다”고 설명.

기계공학과 등 자동차 관련 학과들은 기아자동차의 도산으로 기아의 지원을 받았던 연구가 모조리 사장될 위기. 기아로부터 15억원을 지원받기로 하고 설립된 한양대 자동차공학과는 10억원만 지원된 후 추가지원이 끊겨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필요한 인재를 미리 확보하기 위해 기업들이 앞다퉈 만들었던 장학금 제도도 거의 사라졌다.

S대 물리학과 박사과정인 H씨는 “한 대기업에서 입사를 조건으로 지금껏 등록금과 연구비를 받아왔으나 최근 ‘돈을 돌려받지 않아도 좋으니 오지 말라’는 통보를 받았다”고 소개. 장학금을 받을 당시에는 반드시 입사하겠다는 ‘각서’까지 썼다는 것.

배기소음을 획기적으로 줄인 자동차 소음기를 개발한 후 기아의 도산으로 상품화에 어려움을 겪었던 한양대 오재응(吳在應)교수는 “‘위기일수록 투자를 늘리라’는 격언은 지금 우리 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며 “당장 어렵다고 R&D 투자를 줄이는 것은 ‘근시안’적인 시각”이라고 지적했다.

〈홍석민기자〉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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