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졸자들 『취업된다면 무엇인들 못하랴』

  • 입력 1997년 10월 3일 19시 57분


지방 B대학 4학년인 황모씨(28·중문학과)는 취업 시즌이 시작되면서 불안해지는 마음을 다독거릴 수 없다. 지난해 1년간 중국 베이징(北京)에 어학연수를 다녀와 중국어실력을 밑천 삼아 대기업 상사 쪽을 노리지만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선배들로부터 『어학연수를 하지 않은 사람 찾기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부터다. 올 하반기 50대 그룹의 채용규모는 약 7만9천명. 그러나 내년 2월에 대학을 졸업하는 취업희망자만 17만2천명. 취업재수생 20만명을 감안하면 올해 취업은 「낙타가 바늘 귀를 통과한다」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어렵다. 대졸 예정자들의 고민도 깊을 수밖에 없다. 서울 G대의 화학관련 학과 졸업예정자들 사이에서는 때아닌 영어학습 열풍이 불고 있다. 전공분야 기업체의 채용규모가 줄어들자 상사 또는 무역회사 쪽으로 급하게 방향을 돌린 것. 4년간 배운 전공과목은 취업의 벽 앞에서 「거추장스러운 짐」이 될 뿐이다. 인문계열 학과는 더 심하다. 어문계 학과 졸업예정자 가운데는 일찌감치 기업체를 포기하고 학원강사를 택한 경우도 적지 않다. 장래성 면에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지지만 생활을 위해선 할 수 없다는 것. 자격증을 따느라 바쁘게 뛰기도 한다. 자신을 돋보이게 할 항목을 하나라도 더 늘리기 위해서다. 전공을 불문하고 일본어능력평가시험을 치르거나 OA기사자격시험 PC활용능력시험에 도전한다. K대 기계과 4년생 K씨는 심지어 소방안전기사자격증을 땄다. 자원봉사활동 참가도 빼놓을 수 없는 항목. 매달 시행되는 토익시험에 대비해 수업을 제쳐놓고 영어학원에 다니는 것은 별난 일이 아니다. 면접에서는 한문실력도 당락을 가르는 변수의 하나. 지방대 취업정보실의 한 관계자는 『면접을 앞둔 학생들에게 천자문 공부를 당부한다』고 말했다. 서울 S여대 무역학과 94학번 동기생은 모두 40명. 4년만에 졸업하는 학생은 절반도 안되는 18명이다. 어학연수나 공무원시험 등을 위해 휴학을 한 때문. 4학년 1학기를 마치고 뒤늦게 고시준비를 위해 휴학한 학생도 있다. 여대생들의 경우 입사 대비 성형수술은 대부분 여름방학 이전에 끝냈다. 여대졸업반 L양은 『취업원서에 키와 몸무게를 기입하는 항목을 보고 「다이어트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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