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醫가 본 전현주]문학도서 살인마 변신까지

  • 입력 1997년 9월 13일 18시 22분


「그리움의 강으로 흐르는 시월은/ 밤이면 밤마다 님을 부르고/ 먼발치 돌아가는 님의 아쉬움에/ 오늘도 지는 밤은 그리움이다」. (그리움의 강으로 시월의 밤이 흐르고·전현주) 95년 봄. 전현주씨는 꿈과 사랑과 그리움을 가슴 가득 품은 여류시인이었다. 그리고 97년 가을. 문득 TV화면에 전씨가 나타났다.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을 충격과 경악으로 몰아넣으면서…. 박나리양(8)을 유괴하고 살해한 전씨는 더이상 시인의 모습이 아니었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이 여성을 나락으로 몰았을까. 중산층의 엄한 가정에서 자란 문학도였던 그는 결혼을 하면서부터 살던 집까지 차압당하는 등 돈문제로 곤란을 겪었다. 3백만원의 대출금과 친구들에게서 빌린 돈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탈출구가 필요했다. 남편이 돈을 잘 버는 것도 아니었다. 암담한 상황에서 그가 선택한 것은 문학적 상상력의 동원. 신경정신과 김헌수(金憲秀·서울중앙병원)박사는 『경제적 고통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해 그는 펜으로만 구상해오던 문학작품 속의 허구를 직접 현실로 만들어냈다』고 분석했다. 허영과 자존심이 강한 성격도 그의 변화를 불러온 요인중 하나다. 김박사는 『그는 무대설치가인 남편을 남들에게 인기배우라고 소개하는 등 허영심과 열등의식에 젖어 있었다』면서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문학을 통해 잠재욕구를 승화시킬 경우 대부분 아름답고 서정적인 내용으로 나타나지만 그 이면에는 위선으로 가득차 있다』고 말했다. 결혼하기 전 그와 한 동네에 살던 사람들은 TV화면에서 그의 얼굴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착하고 글 잘쓰기로 소문난 현주가 그런 일을 저질렀을리 만무하다』며 그의 범행을 믿으려들지 않았다. 그러나 빛도 들지 않는 지하실에서 나리양의 손발을 묶고 목을 조른 것은 결국 이 「얌전하고 착한」 여인의 손이었다. 또한 그는 검거이후를 미리 대비하는 용의주도함도 보였다. 검거직전 남편 호출기에 『나혼자 한 것이 아니야. 시킨대로만 했어』라는 메시지를 남겨 공범의 존재를 암시하는가 하면 경찰에서도 6명이 함께 납치극을 벌였다고 진술, 수사를 혼란시켰다. 무엇보다 가증스러웠던 점은 납치하자마자 나리양을 살해하고도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말하며 2천만원을 요구하는 협박전화를 걸고 그 후 태연하게 후배들을 불러 술을 마셨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김박사는 『문학적인 상상력이 경제적인 어려움과 맞물리면서 도저히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상반된 두가지 모습이 한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자신의 시 몇 편이 실린 시집을 친한 후배에게 주면서 책머리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진정 아름다운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너의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위하여」. (현주)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시인이 불과 2년 후 임신부의 몸으로 아무도 보지 않는 지하실에서 어린 소녀를 살해하는 악마로 돌변하면서 문학도의 꿈도 막을 내렸다. 〈윤종구·금동근·이훈·박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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