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은 어디로…]『국민은 우리편』 철없는 착각

  • 입력 1997년 6월 5일 20시 06분


지난 4일 발생한 20대 근로자 李石(이석)씨의 프락치 오인 폭행치사사건은 학생운동의 순수성에 대해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있던 국민마저 경악시켰다. 특히 이씨의 시체를 부검한 결과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이 『몇차례 가격을 했다』고 주장한 것과 달리 이씨는 각목 등으로 수없이 폭행당한 것으로 드러나 한총련의 폭력성은 물론 부정직성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고문이나 다름없는 한총련 간부들의 폭행으로 이씨의 신체 표면 40%에 해당하는 부위에서 피하출혈 흔적이 발견되고 체내 혈액의 절반에 가까운 2천㏄가량의 내출혈이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한총련 폭력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숨진 경찰관만도 93년 김춘도순경, 96년 김종희이경에 이어 이번의 유지웅상경까지 모두 3명이나 된다. 한총련 지도부는 경찰관 사망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폭력시위를 자제하겠다고 밝혔으나 얼마가지 않아 다시 화염병과 돌이 난무하는 「구태」를 재연했다. 한총련은 왜 국민의 엄청난 비난에도 아랑곳없이 과격 폭력시위를 버리지 못한 채 무고한 20대 근로자를 경찰프락치로 오인해 폭행치사까지 저지르는 지경에 이른 것일까. 80년대 학생운동을 이끌었던 전대협 출신 등 운동권 선배들은 이같은 현상이 현재의 한총련을 이끌고 있는 지도부의 잘못된 현실인식과 「전근대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총련 지도부는 현 시국을 6.10항쟁이 일어난 지난 87년처럼 전국민적인 항쟁분위기가 고조된 혁명적인 상황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들은 올해 초의 개정노동법 무효화 투쟁에 이어 한보비리사건과 92년 대선자금의혹 등이 잇따라 불거져 나오자 대다수 국민이 한총련의 투쟁노선과 행동을 지지하고 있다는 「엄청난 착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도부가 이처럼 현실과 크게 괴리돼 있기 때문에 80년대 학생운동과는 달리 한총련이 주도하는 학생운동은 국민은 물론 일반 학생들의 정서와도 거리가 먼 것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운동권 선배들의 지적이다. 한총련 지도부의 잘못된 현실인식은 한총련 조직의 경직성에서 비롯된다. 출범 때부터 민족해방계열(NL)의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고 있는 한총련 지도부는 온건파 등 다른 계열의 내부 비판을 전혀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번 출범식의 경우가 바로 강경파가 주도하고 있는 한총련 내부의 이같은 경직성을 잘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사례. 당초 출범식 장소인 한양대가 경찰에 의해 원천봉쇄되자 한총련 내부에서는 제2의 장소에서 출범식을 치르자는 의견이 제기됐으며 경찰도 다른 대학에서의 출범식은 묵인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러나 이같은 의견은 당초 이번 시위를 6.10항쟁 10주기인 6월10일까지 끌고 가려던 강경파의 명분론에 밀려 완전히 무시됐다. 자신들의 주장을 비판하는 쪽은 모두 기회주의나 개량주의로 몰아붙이는 이들 강경파로 인해 한총련 내부의 토론 문화는 실종돼 버린지 오래다. 한총련의 노선설정이나 현실분석 또한 80년대처럼 내부 토론을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과거 한총련 지도부를 형성했던 선배들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요된 것이 대부분이라는 지적이다. 〈이현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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