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총각의 북한이야기]버스 운전사 대부분이 여자

  • 입력 1996년 11월 17일 20시 08분


평양시에서 버스는 지하철과 함께 가장 중요한 대중교통수단이다. 자가용은 거의 없다. 그러나 다른 도시에는 지하철이 없기 때문에 버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하다. 북한에서는 국영회사가 모든 버스운행을 책임진다. 내가 북한에 있을 때는 어느 도시를 가나 시내버스요금은 지하철요금과 똑같은 성인 10전, 미성년자 5전이었다. 북한의 평균월급이 80원이므로 10전은 남한돈 1천원과 맞먹는 액수였다. 북한당국은 80년대초부터 차장을 없애고 승객들이 자발적으로 문앞에 설치된 함에 버스권(토큰 대신 종이로 만든 버스권을 사용했음)이나 잔돈 10전을 넣도록 했다. 그러나 버스권을 넣지않고 슬그머니 올라타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다 운이 나쁘면 승객 속에 숨어있는 감시원에게 붙들려 조직에 통보되고 처벌을 받았다. 큰 기업소에서는 직원들을 위해 자체 통근버스를 운행하거나 직원들의 교통비를 지원해주기도 했다. 대학생들은 교통비의 50%까지 지원을 받았다. 평양시에는 일반 휘발유버스와 함께 무궤도전차도 다녔다. 무궤도전차는 전부 국산이었지만 휘발유버스는 체코와 헝가리제가 많았다. 일반버스와 모양은 똑같지만 전기로 움직이는 무궤도전차의 지붕에는 전기를 끌어올 수 있는 두 개의 긴 철봉이 달려 있었다. 평양시는 전차와 버스노선이 비교적 잘 조정돼 시민들이 이용하는데 큰 불편이 없었다. 운전사 대부분이 여자라는 것도 특이한 점이었다. 지방 대도시 중에도 무궤도전차를 운영하는 곳이 일부 있었다. 또한 지방도시들은 휘발유가 귀해 휘발유버스를 개조, 연탄이나 나무를 때는 목탄버스로 운영하기도 했다. 이런 버스들은 유리창이 깨져 있고 냉난방이 거의 안돼 겨울에는 추위에 떨며 여름에는 더위를 견디며 타야했다. 북한은 대중교통수단이 열악한 편이지만 서울처럼 갑작스런 노선폐쇄나 연례행사같은 요금인상은 없었다. 全 哲 宇(한양대졸업·89년 동베를린에서 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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