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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는 개개의 사물을 노래하며 대상에 대한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왔다. 그중 벌은 나비와 달리 한시에서 자주 읊은 대상은 아니었다. 조선시대 이행(李荇·1478∼1534)은 ‘꿀벌의 노래(蜜蜂歌)’에서 다음과 같이 읊었다.마지막 구절은 굶주린 벌을 항아리에 거두어 기른 승려에게 벌이 …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시인들은 왕의 총애를 잃은 궁중 여인의 애달픈 처지에 공명(共鳴)해 많은 작품을 썼다. 이를 궁원시(宮怨詩)라 부른다. 지난 회에 소개한 궁중 여인의 실제 삶을 소재로 한 궁사(宮詞)와 달리, 이 작품들은 시인이 그녀들의 입장이 돼 슬픔과 고독, 원망과 그리움을 토…

신상옥 감독의 영화 ‘궁녀’(1972년)에서 윤정희가 연기한 복녀는 번듯한 양반집 며느리였지만 남편을 구하기 위해 궁녀가 된다. 복녀는 임금의 눈에 들어 후궁으로 신분이 상승하지만 궁중 암투의 희생양이 돼 비극적 최후를 맞는다. 사실 임금의 총애를 받는 궁녀 이야기란 대부분의 궁녀와는…

당나라 천보(天寶·현종 때의 세 번째 연호로 742∼756년) 연간의 어느 봄날, 고황(顧況·727?∼816?)은 우연히 어원(御苑·궁궐의 후원)의 물길을 따라 떠내려 온 오동잎을 주웠다. 잎사귀엔 시가 적혀 있었다. “한번 구중궁궐로 들어온 뒤, 해마다 봄조차 보지 못했어요. 겨우 …

조선시대 차천로(車天輅·1556∼1615)는 11회에 소개한 이백처럼 ‘자라(鼇)’ 이미지를 즐겨 쓴 시인이다. 자라에 얼마나 집착했던지 상대가 먼저 자라란 말을 쓰면 시 쓰기를 그만둘 정도였다.(양경우의 ‘제호시화·霽湖詩話’) 그가 정유재란 무렵 고향인 송도(지금의 개성)에서 벗들과…

팀 버턴 감독의 영화 ‘빅 피쉬’(2003년)에서 아들은 아버지가 잡을 뻔했다는 거대한 물고기 이야기를 믿지 않는다. 말할 때마다 더 커지는 듯한 아버지의 물고기 이야기처럼, 한시의 세계에도 허풍처럼 느껴지는 과장된 표현이 특기인 시인이 있다. 이백(李白·701∼762)은 흰 머리가 …

우디 앨런 감독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1985년)에선 사랑받지 못한 여인의 판타지가 흥미롭게 전개된다. 세실리아는 무능한 데다 폭력적이기까지 한 남편에게 늘 상처받는다. 그녀는 오직 영화로부터 위안을 얻을 뿐이다. 그녀는 남편의 불륜을 확인하고 집을 나온 뒤 ‘카이로의 붉은 장미’…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2014년)에서 왕년의 스타 리건 톰슨은 재기를 위해 미국 브로드웨이 연극에 도전하지만 평론가의 냉혹한 평가에 좌절한다. 그는 거울을 보며 자신을 조롱하는 세상에 대한 강박관념을 폭발시킨다. 상황은 다르지만 송나라 소순흠(蘇舜欽·1008∼…

새해가 밝았다. 한 살을 먹어서 기쁜 사람이 있는 반면 나이가 드는 것이 반갑지 않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스무 살이 되자 새해 아침 거울에 얼굴을 비춰 봤다. 드문드문 수염이 솟아 있는 게 아닌가. 그는 기뻐서 시를 썼다. 한시에서 거울에 비친 자신…

삶을 성찰하는 특별한 예술작품을 감상하기 위해서는 길고 지루하더라도 인내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테오도로스 앙겔로풀로스 감독의 영화 ‘영원과 하루’(1998년)나 중국 남조(南朝) 송(宋) 포조(鮑照·414?∼466)의 ‘송백편(松柏篇)’이 그런 작품이다. 혼란한 세상 속 불우했던…

죽은 뒤 내 묘비엔 어떤 말이 새겨질까.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로얄 테넌바움’(2001년)에는 가족들로부터 외면받던 아버지가 자신의 묘비명을 스스로 정하는 내용이 나온다. “로얄 타넨바움, 침몰해가는 전함의 잔해에서 가족들을 구하다 비극적으로 전사하다.” 사실이라기보다 바람을 담…

여기 가족을 이끌고 정처 없이 떠도는 중년의 남자가 있다. 그는 지금의 중국 충칭 일대 강변에서 의지할 데 없는 자신의 처지를 다음과 같이 썼다. 또 다른 중년의 남자는 고향을 떠나 가족을 찾아 떠돈다. 중국 자장커(賈樟柯) 감독의 ‘스틸 라이프’(2006년)에서 주인공 한산밍은 …

영화가 하나의 선명한 색채 이미지로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한시에서도 이런 사례가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고려 정지상(鄭知常·?∼1135)의 ‘임을 보내며(送人)’를 다른 방식으로 읽어보자. 마르지 않는 대동강물처럼 끊임없이 불어나는 이별의 슬픔을 표현한 시다. 비 갠 뒤 짙어…

프랑수아 지라르의 영화 ‘레드 바이올린’(1998년)에서는 17세기 만들어진 바이올린이 현대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공간의 인물들과 만나 빚어지는 다양한 사연이 펼쳐진다. 이 영화의 바이올린처럼 사물(事物)에 초점을 맞춘 독특한 이야기 방식을 한시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당나라 …

1894년 김동호(金東浩)는 청나라로 가는 조선의 마지막 사행단을 따라 북경에 갔다. 그가 맡은 임무는 전보국을 통해 경성의 소식을 수집하고 청일전쟁의 전황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격변의 와중에 전선이 끊긴 줄도 모르고 그는 하염없이 고국의 소식을 기다렸다. 김동호를 이다지도 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