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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6년과 2026년[임용한의 전쟁사]〈397〉

    1926년과 2026년[임용한의 전쟁사]〈397〉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한다.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되지 않는 진실이다. 21세기에 들어선 뒤 20세기의 행적이 되풀이되는 듯한 느낌을 여러 번 받았다. 다행히 1차 세계대전 같은 재앙은 피했지만, 2차 세계대전 전에 벌어졌던 여러 상…

    • 2025-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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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어붙은 대지와 포연[임용한의 전쟁사]〈396〉

    얼어붙은 대지와 포연[임용한의 전쟁사]〈396〉

    2025년이 저물어 간다. 포연 속에서 또 한 해를 마감하는 나라도 있다. 인간은 누구나 평화롭고 풍족한 삶을 원한다. 가족이 모인 저녁 식탁은 웃음과 유머가 그치지 않는다. 자녀들은 서로 핀잔을 주고, 아버지가 인상을 쓰고 어머니가 짜증을 내도, 매일 그렇게 우당탕 쿵쾅할 수 있는 …

    • 202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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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순신을 위한다는 착각[임용한의 전쟁사]〈395〉

    이순신을 위한다는 착각[임용한의 전쟁사]〈395〉

    임진왜란은 종전이 된 후에도 오랫동안 우리 사회와 한국인의 정서에 큰 영향을 남겼다. 영화나 드라마가 없던 시절이었지만, 임진왜란과 관련된 인물과 전투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인문지리서인 이중환의 ‘택리지’는 지역의 풍속과 인심에 대해서도 소개하는데, …

    • 2025-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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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가 독재를 이긴다?[임용한의 전쟁사]〈394〉

    자유가 독재를 이긴다?[임용한의 전쟁사]〈394〉

    자유를 위해 싸우는 시민 군대는 전체주의 군대에 승리할 수밖에 없다. 2500년 전 한 줌의 그리스군이 페르시아의 대군을 격파한 뒤 탄생한 명제다.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이 명제는 다시 등장했고, 또 한번 영예를 얻었다.그런데 정말 그럴까? 페르시아군의 패인은 부실했던 전쟁 준비와 전…

    • 2025-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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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행복했던 황제, 네로[임용한의 전쟁사]〈393〉

    가장 행복했던 황제, 네로[임용한의 전쟁사]〈393〉

    로마에 코르불로라는 장군이 있었다. 카이사르가 갈리아를 정복하고 로마가 제국으로 자리 잡는 동안, 로마 군단은 수십 대 일의 병력 차에도 빛나는 전투를 벌였다. 그런 로마군에 치욕적인 패배를 안긴 나라가 파르티아였다. 사막과 스텝 지대에서 기병을 주력으로 싸우는 파르티아 군대는 중장갑…

    • 2025-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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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 만능주의[임용한의 전쟁사]〈392〉

    법 만능주의[임용한의 전쟁사]〈392〉

    조선의 군사제도는 급료가 없는 부역병 체제였다. 후기에 급료병이 생기지만, 이들의 급료는 정확히 월세 비용밖에 되지 않았다. 조선 정부는 생계를 위해 병사와 이들의 가족이 시장에서 장사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것은 조선 후기 서울에서 시장 발전과 사회 변동을 유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 2025-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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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을 둘러싼 힘의 충돌[임용한의 전쟁사]〈391〉

    대만을 둘러싼 힘의 충돌[임용한의 전쟁사]〈391〉

    1944년 태평양에서 미국이 반격을 시작했을 때, 일본으로의 진격 경로를 두고 백악관과 군 수뇌부 사이 논쟁이 벌어졌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필리핀을 경유하는 루트를 제시한 반면, 체스터 니미츠 해군 총사령관은 대만 점령 뒤 대만해협을 통해 진격하는 안을 주장했다. 당시 프랭클린 …

    • 2025-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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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사력 강화의 셈법[임용한의 전쟁사]〈390〉

    군사력 강화의 셈법[임용한의 전쟁사]〈390〉

    해군의 오랜 숙원은 항공모함과 원자력 추진 잠수함(원잠) 보유였다. 항모나 원잠이 꼭 필요한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무엇이 우선인가? 둘 다이든 그중 하나든 그것을 운영할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가? 이런 논쟁은 수년 전부터 치열하게 전개돼 왔다. 경제 역량이 따라준다면…

    • 202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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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후의 불꽃일까[임용한의 전쟁사]〈389〉

    최후의 불꽃일까[임용한의 전쟁사]〈389〉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쉽지 않겠지만 올해는 끝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이제 올해도 두 달밖에 남지 않았다. 러시아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시간을 끌면서, 최고 수위의 공세로 가능한 한 많은 점령지를 확보하려는 속셈이다. 그러나 공세가 기대만큼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북한군과 쿠바 …

    • 202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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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키스탄-아프간 전쟁의 이유[임용한의 전쟁사]〈388〉

    파키스탄-아프간 전쟁의 이유[임용한의 전쟁사]〈388〉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의 전쟁이 국경 충돌 수준에서 진짜 전쟁으로 비화하고 있다. 모든 전쟁의 원인에는 외부적 요인과 갈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국내적 요인이 다 있다. 파키스탄은 5월 인도와 무력충돌로 치달았던 ‘화약고’ 카슈미르에서의 분쟁에서 선전했다. 하지만 인도의 체급에 체면…

    • 202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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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협정 1단계[임용한의 전쟁사]〈387〉

    평화협정 1단계[임용한의 전쟁사]〈387〉

    미국과 아랍 주변국들의 협박과 중재로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전쟁 종식을 위한 1단계 평화협정이 체결됐다. 강경파의 반발을 우려하던 이스라엘 내각도 이 휴전안에 합의했다. “미국 협박이 역시 대단하구나”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양측의 전쟁 수행능력도 한계에 이르렀기에 1단계 휴전안 정…

    • 2025-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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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애치슨 라인[임용한의 전쟁사]〈386〉

    신애치슨 라인[임용한의 전쟁사]〈386〉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군사력의 중심축을 대만과 일본을 잇는 ‘제1도련선’에 두고 중국 견제에 주력하려 한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1950년 미국이 극동 방위선에서 한국을 제외한다고 선언한 ‘애치슨 선언’이 북한의 남침 결정에 불을 붙였던 역사를 떠올리면, ‘신(新)애치슨 라인’ 가능성은 …

    • 2025-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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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두 얼굴의 사나이[임용한의 전쟁사]〈385〉

    두 얼굴의 사나이[임용한의 전쟁사]〈385〉

    갈리아와 이집트를 정복해 로마를 제국으로 만든 사람은 카이사르다. 그러나 어떤 일이든 단번에 이뤄지는 법은 없다. 카이사르의 등장 이전에 마리우스와 술라라는 두 군사 실력자가 로마를 제국의 길로 인도하고 있었다. 그들의 시대에 로마는 지중해와 에게해를 장악하고, 그리스와 튀르키예 지역…

    • 2025-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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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단으로 극단을 치유한다?[임용한의 전쟁사]〈384〉

    극단으로 극단을 치유한다?[임용한의 전쟁사]〈384〉

    역사는 돌고 돈다고 한다. 이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하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라는 말이 있다. 역사적으로 이런 사례는 수도 없이 반복된다. 하지만 동지가 되는 방식이 매번 다르다. 동지가 되는 원인, 기간, 협력 방식은 시대 변화와 다양한 조건에 지배를 받는다. 러시아-우크…

    • 2025-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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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열과 전쟁[임용한의 전쟁사]〈383〉

    분열과 전쟁[임용한의 전쟁사]〈383〉

    매년 9월 15일은 인천상륙작전 기념일이다. 6·25전쟁 중인 1950년 9월 15일에 펼쳐진 인천상륙작전은 몇백만분의 일의 확률로 진행된 기적의 승리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당시 인천에는 북한군이 거의 없었다. 북한이 인천에 있던 사단 병력을 낙동강으로 내려보내도록 했기 때문이다.…

    • 202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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