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안산공단의 1996년 3월은 무척 추웠다. 대학원 입학을 앞두고 교수님의 연구실에 처음 찾아갔을 때, 책상 위에는 안산의 공단 지도와 업체 현황,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 정보가 있었다. 지도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선을 그어 공단을 200개 구역으로 나누고, 1부터 20…
2018년 6월 28일의 헌법재판소 결정은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 해결에 대한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그동안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판례는 양심적 병역 거부는―입법적인 해결은 별론으로 하고―현행법 해석상 인정되지 않으며, 대체복무 없는 상태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
백발이 성성한 일본 도쿄대의 후지모토 다카히로 교수는 믿거나 말거나 지금도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공장을 방문한다는 현장 중시의 경제학자다. 이 노학자는 일본 산업계의 현실을 한마디로 ‘강한 현장과 약한 경영’이라고 표현했다. 일본 산업현장의 축적된 기술역량은 뛰어나지만 경영자와 정책 …
나는 청년기부터 간디를 존경했지만 한 가지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이 있었다. 간디는 산업주의를 철저히 배격하고 반대했다. 그가 전개한 평등과 비폭력, 스와데시(애국) 스와라지(공동체 자치) 운동이 모두 위대해 보였지만 산업주의에 반대한 그의 생각을 산업주의가 완벽히 지배하는 시대에 태어…
스포츠 전문가마다 자신만의 관전법이 있다. 한 전문가는 이번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 우리 선수들의 입만 쳐다봤다고 한다. 경기 후반에 입이 벌어진 선수가 꽤 있었고, 그런 선수들은 100% 패했다고 했다. 입이 벌어졌다는 건 체력이 달린다는 건데, 그는 “우리 스포츠의 현주소를…
‘미투’란 본래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틴의 성폭력 가해 폭로에서 시작된 성폭력, 특히 권력형 성폭력 문제를 공론화한 운동의 용어다. 그러나 요즈음은 미투라는 표현이 운동적 의미를 넘어 생활 전반에 점점 흔히 쓰이고 있는 것 같다. ‘성폭력 가해 지목자’보다는 ‘미투 가해…
17일 통계청이 발표한 ‘7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취업을 희망하고 지난 1년 내 구직 경험이 있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구직 단념자’가 54만6000명으로 2015년 통계 작성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필자 연구팀이 매주 발표되는 대통령 지지율 조사 결과를 취합해 조사 기관…
한국에 있다 보면 일본은 인구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실업률이 떨어진다는 말을 종종 듣는다. 특히 청년 인구의 감소로 청년 노동자가 귀한 대접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리고 한국에서도 청년 인구가 감소할 것이기 때문에 청년실업 문제는 머지않아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고 …
질문을 받았을 때 대답을 못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질문을 못 알아들었거나 알아들어도 답을 모를 때다. 질문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답을 구할 수도, 구할 필요도 없다. 질문을 이해한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답을 구할 수 있다. 후자는 문제가 무겁지만 어떻게든 언젠가는 해결을 기대해볼 수 …
정보기술(IT) 강국 대한민국에서 첨단기술의 발달은 우리 삶을 다양하게 바꾼다. 드디어 대법원이 형사 절차에 전자소송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초 서울의 법원에서 부패·경제사건 등 기록 분량이 많은 사건부터 시범 실시하고, 2020년까지 전면 확대할 방침이다. 우리나라에선 이미…
미국인들 중엔 ‘적정 집값은 연소득의 두세 배’라고 하는 이들이 많다. 집값이 소득의 네 배만 넘어도 빚 갚기가 버겁기 때문이다. 미국 대도시의 소득 대비 집값 비율을 보면 시카고(3.8배), 댈러스(3.8배)처럼 ‘약간’ 비싼 곳도 있지만 뉴욕도시권(5.7배), 시애틀(5.9배)처럼…
남한과 북한, 미국, 중국이 종전선언을 추진 중이라는 소문이 들린다. 종전선언이 평화조약을 의미하는지, 평화체제를 의미하는지 혹은 또 다른 준(準)법적장치를 의미하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어떤 의미를 갖든 한반도의 정치적 균형을 변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까지 정치적 혹은 군…
선거를 민주주의의 축제, 꽃이라 부른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한 선거 중에 축제처럼 흥겹고 꽃처럼 아름다웠던 선거가 몇 번이나 있었나? 지난 70년간 수많은 선거를 치렀지만 선거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은 축제가 아닌 투쟁이었고, 그 이면의 불법과 부정은 꽃이 아닌 진흙탕이었다. 갈등…
예멘인 517명이 제주도로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하면서 촉발된 논란이 여전하다. 이들 대부분이 젊은 남성이라는 점을 들어 난민을 가장한 불법 취업자라는 의심부터 한국을 이슬람 국가로 만들기 위해 파견된 전사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온갖 소문이 무성하다. 이슬람 국가 예멘에 대한 무지는 테…
당뇨병 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아프게 채혈을 해야 하는 아이가 있다. 보다 못한 어머니가 피를 뽑지 않고도 혈당을 잴 수 있는 기기를 수입했다. 스마트폰용 앱까지 스스로 만들어 주변에 나누어 주었지만 결국 관련 규제를 위반한 사람이 되었다. 지난달 ‘의료기기 규제혁신 방안’ 발표 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