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석호]우리의 위장된 걱정이 더 무섭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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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출신의 백인에게 무한 호의
저개발 국가 출신의 외국인만 ‘걱정’, 걱정 뒤에 도사린 인종주의적 편견
난민은 생존을 위해 탈출한 희생자… 가장 힘없는 부분을 겨눌 편견 두려워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예멘인 517명이 제주도로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하면서 촉발된 논란이 여전하다. 이들 대부분이 젊은 남성이라는 점을 들어 난민을 가장한 불법 취업자라는 의심부터 한국을 이슬람 국가로 만들기 위해 파견된 전사라는 주장에 이르기까지 온갖 소문이 무성하다. 이슬람 국가 예멘에 대한 무지는 테러리스트 이미지로 덧씌워진 무슬림에 대한 공포와 결합해 이들에 대한 적대감으로 변하고, 적대감은 후손에게 온전한 나라를 물려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둔갑한다. “제주도 난민 수용을 반대한다”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게시된 지 얼마 되지 않아 20만 명을 훌쩍 넘길 정도로 우리의 걱정이 깊다.

자녀의 미래에 대한 우리의 걱정을 폄훼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걱정은 우리가 인종주의자이고 저발전 국가 출신을 혐오한다는 우리의 민낯을 감추기 위해 활용되는 장치일 뿐이다. 제조업체에서 일손이 부족하고 농촌에 신부가 없어 외국인을 한국사회의 일부로 받아들이기 시작한 지 30여 년이 지났건만, 우리는 여전히 선진국 출신 백인에게는 무한한 호의를, 저발전 국가의 외국인에게는 그 ‘걱정’만 한없이 늘어놓는다.

예멘 난민에 대한 우리의 걱정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무사증 제도와 난민 제도를 악용해 입국하는 무슬림이 많아지면 범죄율이 증가해 국민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걱정이다. 2015년 범죄통계를 보면, 내국인 10만 명당 범죄 검거자 수는 3524명이고, 외국인은 1591명으로, 내국인의 범죄율이 외국인보다 2.2배 더 높다. 다음으로 외국인이 내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고 복지제도에 무임승차함으로써 한국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란 걱정이다. ‘일자리 정부’가 들어선 지 1년이 지났어도 청년 실업률은 계속 높아지고 있으며 좋은 일자리는 노동시장에서 점점 자취를 감추고 있다. 월급쟁이는 월급쟁이대로, 자영업자는 자영업자대로 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이고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신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게 난민들 탓인가?

3만2733, 792, 25만1041. 무슨 암호처럼 보이겠지만, 첫 번째는 1994∼2017년 한국 정부에 난민 지위 인정을 신청한 누적 수이고 두 번째는 정부가 난민으로 인정한 수치다. 이 정도 규모의 난민 인정 비율로 우리의 걱정이 현실이 될 것 같지 않다. 세 번째는 2017년 현재 불법 체류자 수다. 이들 중 상당수는 무슬림일 것이다. 예멘 난민 신청 논란 이전에는 약 25만 명의 불법 체류자들에 대한 걱정을 우리는 왜 하지 않았을까?

정부의 범죄 대처 능력이 걱정이라면 안심하고 밤에도 거닐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달라고 요구할 일이다. 좋은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이 걱정이라면 내국인이 기피하는 자리에서 일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비난할 게 아니라 전체 일자리의 약 90%를 책임지는 중소기업에도 좋은 일자리를 만들라고 채근해야 할 것이다. 정부의 이민 및 난민 정책 능력이 못 미덥다면 출입국 관리와 외국인 전문 인력은 법무부에서, 저숙련 외국 인력은 고용노동부에서, 다문화 가족은 여성가족부에서 각각 담당하는 이 우스꽝스럽고 부끄러운 이민 행정을 체계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외국인 정책 전담기구를 만들라고 주장해야 할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지구촌 구석구석에서 악전고투하고 있는 우리의 손녀, 손자, 딸, 아들이 우리처럼 인종적 편견에 물든 사람과 매일 얼굴을 맞대고 미래를 꿈꾸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끔찍하지 않은가? 현재 우리의 걱정 뒤에 도사린 인종주의적 편견이 만들 세상이다. 이게 우리가 원하는 미래의 모습인가? 우리와 그들을 구분하고 그들만의 전통과 관습, 그리고 종교적 신념을 부각해 서로의 차이를 과장하지 말자.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 중에서 우리가 원래 가지고 있던 것이 얼마나 되는가? 변화를 받아들이는 유연한 마음만이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가능케 한다. 그들도 100여 년 전 멕시코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예로 일하다 죽어간 조선의 백성들처럼 정치 갈등의 소용돌이에서 생존을 위해 탈출한 희생자들이다. 그들을 혐오하고 비난한다고 해서 우리의 척박한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다.

예멘 난민이 두려운가? 나는 당장은 517명의 예멘 난민을 향하지만 언제든 우리의 가장 힘없고 취약한 부분을 겨눌 우리의 편견이 두렵다. 당신의 위장된 걱정이 더 무섭다.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예멘 난민#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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