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차진아]大法, 대체복무 없는 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하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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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2018년 6월 28일의 헌법재판소 결정은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 문제 해결에 대한 중요한 변곡점이 됐다. 그동안 대법원과 헌법재판소의 일관된 판례는 양심적 병역 거부는―입법적인 해결은 별론으로 하고―현행법 해석상 인정되지 않으며, 대체복무 없는 상태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처벌하는 것은 합헌이고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헌재 결정에서는 대체복무를 도입하지 않은 것이 헌법에 합치되지 않고 국회는 내년 말까지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주목할 점은 헌재가 병역법 제5조에서 대체복무제를 두지 않는 것은 헌법에 합치되지 않지만, 병역법 제88조 제1항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포함한 병역 기피자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는 점이다. 논리적 일관성 측면에서는 양자 모두 헌법불합치 또는 합헌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일견 모순적인 결정이 내려진 것은 국회에서 개정 시한 내에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지 못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국회가 개정 시한을 넘겨서 병역법 제5조가 무효로 될 경우 국회의 입법이 있을 때까지 병역 판정을 못 하게 된다. 반면에 병역법 제88조 제1항이 무효로 될 경우에는 모든 병역 기피자를 형사처벌할 수 없게 된다. 이는 병역법 제5조가 일시적으로 입법 공백에 빠지는 것과는 달리 병역제도 전반을 작동 불능 상태에 빠뜨리게 된다. 만일 이런 사태가 벌어진다면 누가 군대에 가려 할 것이며, 대한민국의 국방체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이제 공은 대법원으로 넘어갔다. 어제 대법원에서는 병역법 관련 사건들에 대한 공개변론을 했다. 변론의 핵심 쟁점은 (현역 입영 또는 예비군 훈련의 정당한 사유 없는 기피를 형사 처벌하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과 예비군법 제15조 제9항 제1호의 ‘정당한 사유’에 양심적 병역 거부가 포함되는지였다. 즉, 양심적 소신을 이유로 현역 입영 또는 예비군 훈련을 거부한 것이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는지가 문제되고 있는 것이다.

하급심 재판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정당한 사유로 인정하여 무죄 판결을 내린 사건들이 점차 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대법원이 기존의 판례를 변경하여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릴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만일 대법원이 무죄 판결을 내린다면 어떤 사태가 발생할까.

우리 사회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바라보는 시각은 양극화되어 있다. 대다수 시민단체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국민 대다수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지난 10여 년의 논란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대체복무 도입에 대해서는 국민의 찬성 의견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이다. 그 의미는 나 자신과 가족, 이웃의 생명과 재산, 나라를 지키기 위한 병역 의무를 거부하는 양심적 병역 거부를 찬성하기는 여전히 어렵지만, 현역복무에 못지않은 강도 높은 대체복무를 이행할 경우에는 수용할 수 있다는 정도의 변화이다. 즉, 대체복무 없는 양심적 병역 거부에 대해서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다는 의견이 여전히 압도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모든 국민이 가장 민감하게 생각하는 문제가 병역 기피와 대학입시 부정이다. 이는 일부 계층의 문제가 아닌, 모든 국민의 문제이며, 그 과정에서의 차별이나 특혜는 온 국민을 분노케 한다. 그런데 대체복무 없는 양심적 병역 거부 인정은 사실상 병역면제의 특혜를 주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만약 대법원이 그런 판결을 내린다면, 과연 국민은 이를 납득하고 수용할 수 있을까.

양심적 병역 거부의 인정은 인권보장의 진전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전제는 합리적 대체복무제의 도입이다. 대체복무제 없는 현재 상황에서, 양심적 병역 거부를 병역법 제88조 제1항의 ‘정당한 사유’로 인정해 무죄 판결을 내리는 것은 현역복무자가 납득하지 못할 것이며, 현역 입영 대상자들이 현역 입영을 기피하게 만들 것이며,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국방체계가 흔들리고 국가 안보가 위태롭게 될 것이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인권도 중요하지만, 현역복무(대상)자의 인권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형평성이 깨지고 양심적 병역 거부자가 사실상 병역 면제 특혜를 누리게 하는 판결은 헌재 결정의 취지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그 후폭풍은 누구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차진아 객원논설위원·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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