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로) 오다 보니까 20분 정도 걸리는데 실제 여기 오는 데 한 700일 걸렸다고 하네요.”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처음으로 2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 발을 들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모두발언을 시작하자마자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 그동안 이 대표가 8차례 윤 대통령과의 회담을 요청했음에도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720일이 지나서야 회담이 성사됐다는 점을 에둘러 지적한 것. “약간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또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얘기가 있다”는 이 대표의 말에 윤 대통령이 소리 내 웃었고, 이 대표도 따라 웃었다.
이 대표는 이날 자신의 모두발언 차례가 되자 퇴장하려던 취재진을 향해 “퇴장할 것은 아니고 제가 대통령께 드릴 말씀을 써 가지고 왔다”며 자신의 재킷 안주머니에서 미리 준비해 온 원고를 꺼냈다. A4 절반 크기 10장 분량의 원고였다. 이 대표는 원고에 빼곡히 적힌 약 4500자 분량의 입장문을 15분 동안 줄줄이 읽어 내려갔다. 이 대표의 즉석 ‘애드리브’ 발언까지 합치면 약 5400자 분량이었다. 그는 원고에 시선을 두면서도 중간중간 자신의 왼편에 앉은 윤 대통령을 똑바로 쳐다보기도 했다.
이 대표는 “저는 정말로 대통령님께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시길 바란다”면서 윤 대통령 면전에서 ‘독재’, ‘통치’ 등의 단어를 써가며 작심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현 정부의 언론 환경을 거론하며 “스웨덴의 연구기관이 (대한민국이) 독재화가 진행 중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고 지적하는가 하면, “사실 지난 2년은 정치는 실종되고 지배와 통치만 있었다는 그런 평가가 많다”라고도 했다. 윤 대통령 면전에서 현재 국정 기조가 ‘독재’에 가깝다고 비유한 것. 그러면서 “행정 권력으로 국회와 야당을 혹여라도 굴복시키려 하시면 성공적인 국정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또 윤 대통령을 향해 “(국민들이 총선을 통해) 편 가르기나 탄압이 아닌 소통과 통합의 국정을 대통령과 여당에 주문하셨다고 생각한다”며 “국정의 방향타를 돌릴 마지막 기회라는 그런 마음으로 국민들의 말씀에 귀 기울여 달라”고 했다. 윤 대통령의 당선 인사 기자회견 발언을 언급하며 “‘이념이 아니라 국민의 상식에 기반해서 국정을 운영하겠다, 잘못은 솔직히 고백하겠다, 국민 앞에 정직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것을 당연히 기억하실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 같은 초심을 잊지 말고 잘 실행하시면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님과 정부를 전적으로 믿고 따를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이 대표는 이날 자신의 발언이 ‘국민의 뜻’이라는 점을 반복적으로 언급했다. 그는 “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은 저의 입을 빌린 우리 국민들의 뜻이다”라거나 “혹여 오늘 제가 드리는 말씀이 거북할 수 있을 텐데, 그것이 야당과 국민들이 가지는 이 정부 2년에 대한 평가의 일면”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발언 말미에는 “정치라고 하는 것이 추한 전쟁이 아니라 아름다운 경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시면 좋겠다”며 “상대를 죽이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는 것도 보여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를 두고 자신을 향한 검찰 수사에 대한 불만을 언급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날 이 대표가 앉을 의자를 직접 빼 줬던 윤 대통령은 이 대표가 발언하는 15분 동안 고개를 끄덕이는가 하면 굳은 표정으로 이 대표가 읽는 원고를 응시하기도 했다. 이후 이 대표가 준비한 발언을 마치자 “좋은 말씀 감사하다”며 “이 대표님과 민주당에서 강조해 오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실 것으로 저희가 예상하고 있었다”고 답했다.
민주당은 대통령실 측에 이 대표의 모두발언을 생중계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대통령실이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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