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이기적인 이재명의 단식[김지현의 정치언락]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18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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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19일 차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서 119 구급대에 실려 국회 인근의 여의도 성모병원 응급실로 이송되고 있다. 뉴스1
“사즉생의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며 8월 31일 단식투쟁에 돌입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결국 19일째인 오늘(18일) 오전 결국 병원에 실려 갔습니다.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은 응급실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대표가) 의식은 있는 상태 있는데, 단식을 중단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진 않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대표는 단식 12일 차에 급격한 체력 저하로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했고, 보름 차이던 16일 자리를 깔고 누웠습니다. 의료진 모니터링 결과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신체 기능이 심각하게 저하돼 있고, 특히 공복혈당 수치가 낮아 건강이 위험한 상황이라 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8일 오전 여의도 성모병원 응급실에서 서울 중랑구 녹색병원으로 이송되는 모습. 녹색병원은 노동자들이 받은 보상금으로 세워져 시민사회계에서 상징성이 있는 병원으로 알려져 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 누구를 위한 단식인가
더불어민주당 시·도의원들과 구청장들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내 민주당 당 대표실 앞에서 이 대표의 단식 중단 촉구 손 피켓을 들고 있다. 동아일보 DB
19일간의 단식을 지켜보면서 들은 생각은, 단식을 시작한 시점부터 그 명분과 과정 모두 이기적이란 겁니다.

보통 정치인의 단식이라 하면, 사회적 약자 등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또는 특정한 정책이나 제도의 변화를 끌어내기 위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죠. 1980년대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은 민주화와 지방자치제 시행 등을 요구하며 단식했습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2014년 세월호 유가족과 동조 단식을 하며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고요. 2018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였던 김성태 전 의원은 ‘드루킹’ 특검을 요구하며 단식했고, 2019년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소미아 파기 철회와 고위공직자수사처 설치 반대, 선거법 개정 반대 등을 요구하며 단식을 했습니다. 물론 당시에도 각각의 단식에 대한 찬반 여론은 엇갈렸지만, 이들이 제시한 단식의 명분과 목표는 분명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8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 텐트를 치고 단식 투쟁에 돌입한 모습. 이날 이 대표는 당 대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 “사즉생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 마지막 수단으로 오늘부터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뉴스1
무기한 단식 중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9월 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 농성장에서 소금을 섭취하고 있다. 뉴시스
이 대표가 무기한 단식을 선언한 건 자신의 당 대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에서였습니다. 그 전날 밤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지도부와 참모 대부분이 만류했는데도 이 대표가 스스로 강력하게 주장해 내린 결정이라더군요. 이 대표가 단식을 시작하며 내건 요구사항은 △민생 파괴, 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윤 대통령의 대국민 사과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반대 입장 천명 및 국제해양법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 쇄신 및 개각 등 세 가지입니다. 서로 성격이 전혀 다른 여러 현안을 묶으려다 보니 전선(戰線)이 여러 갈래로 나뉘어 단식의 명분이 두루뭉술하고, 요구조건의 현실성도 떨어집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단식을 선언한 시점입니다. 이 대표는 단식 선언 직전까지 검찰과 추가 소환 일정 조율을 두고 팽팽한 기 싸움을 벌였죠. 이 대표의 단식이 결국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이기적인 카드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고 해도 시점상 ‘방탄 단식’이란 말이 안 나오기 어려운 거죠. 이 대표는 단식을 선언하던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도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를 “스토킹”이라고 규정하며 자신의 사법리스크 논란에 대해선 “상대가 부당하게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을 두고 ‘너 왜 공격당하느냐’고 하면 대체 야당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나. 누군가를 목표로 해서 정치적 공세를 벌이는 것을 갖고 왜 정치 공세 당하느냐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발끈했습니다. 애초에 민주당 내에서도 “단식에 출구전략이 없어서 문제”(지도부 의원),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 와중에 뜬금없는 단식이라니, 결국 또 ‘방탄용’이라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비명계 의원)는 우려와 비판이 나왔던 배경입니다.

● 검찰 수사 지장 없다더니….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단식 투쟁 16일 차인 9월 15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당 대표실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이 대표는 단식을 시작하면서 “검찰 수사에는 전혀 지장이 없을 것”이라고도 호언장담했습니다만 이 말도 결국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단식 10일째이던 9일 휴식 시간을 포함해 약 8시간 조사를 받던 중 건강상의 이유로 조사 중단을 요청하고는 조서에 서명 날인도 거부한 채 귀가했습니다. 결국 예정했던 조사를 끝마치지 못한 검찰은 12일 그를 한 번 더 불러 조사했죠. 이 대표 측이 단식 전부터 요구했던 ‘쪼개기 출석’이 결국 현실화한 셈입니다. 수원지검은 12일 추가 조사 후 “이 대표의 건강 상황을 고려해 주요 혐의에 관한 핵심적인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최대한 신속히 집중 조사해 (1시간 50분만인) 오후 3시 28분 조사를 모두 종료했다“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형식적인 질문을 하기 위해 두 차례나 소환해서 신문하는 게 납득되지 않는다”고 도리어 큰소리를 쳤고요.

이재명 대표가 9월 9일 수원지방검찰청에서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 관련 조사를 마치고 귀가하는 모습. 이 대표는 이날 휴식시간을 포함해 8시간 조사를 받던 중 건강상의 이유로 조사 중단을 요청했다. 뉴시스
‘검찰 수사와 전혀 무관한 단식’이라던 이 대표의 주장이 무색하게도 민주당은 “단식 중인 사람을 소환하느냐”고도 연일 반발했습니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12일 당 의원총회에서 “단식 중인 제1야당 대표에 대한 검찰의 소환 조사는 우리가 일찍이 보지 못했던 일”이라며 “혐의 여부를 떠나서 검찰의 이런 행태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지나치다고 보고 있다”고 규탄했고, 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도 입장문에서 “아득바득 13일째 단식하는 야당 대표를 불러낸 검사독재정권의 폭력적인 검찰권 행사”라고 비판했죠. 이러니 “결국 검찰 수사를 피하려고 단식한 게 맞지 않느냐”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이 대표는 이달 15일로 예정돼 있던 대장동·위례신도시 특혜의혹 재판도 ‘건강상의 문제’ 등을 들어 다음 달 6일로 연기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12일 오후 수원지방검찰청에서 쌍방울그룹 대북 송금 의혹 관련 피의자 신분으로 2차 조사를 받은 뒤 검찰청사를 나서며 마중 나온 조정식 사무총장(악수하는 사람) 등 민주당 의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이 대표의 단식이 장기화되면서 지켜보는 모두가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평소 그와 독한 설전을 벌이던 여권 인사들마저 인류애적 차원에서 단식 중단을 거듭 요청했죠.

“이 대표께서 건강을 회복하시는 대로 즉시 여야 대표회담을 열고 민생에 대한 치열한 논의를 하자. 명절을 앞두고 우리 정치가 국민께 이런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은 리더로서 책임 있는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된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16일)

“신외무물(身外無物·다른 어떤 것보다도 몸이 가장 귀하다). 단식 초기 ‘철부지 어린애의 밥투정 같다’고 했던 말을 사과드린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목숨 건 단식을 조롱한 건 잘못이다.” (홍준표 대구시장, 16일)

하지만 민주당은 “지난 17일 동안 국민의힘과 김기현 대표는 이재명 대표의 단식을 두고 조롱과 비난을 일삼았다. 단식을 두고 이렇게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지키지 않은 정부는 없었다. 진정으로 이 대표를 걱정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우려한다면 정권 차원의 반성과 쇄신이 우선”이라고 일축했습니다. 도통 출구가 만들어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민주당은 주말인 16일엔 비상 의원총회를 열고 소속 의원 전원 명의로 윤석열 정권 내각 총사퇴와 한덕수 국무총리에 대한 해임건의안 제출을 결의했습니다. 그러자 국민의힘도 다시 “건강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전했는데도 민주당은 내각 총사퇴와 총리해임으로 대답했다. 대한민국과 함께 침몰하겠다는 망국적 놀부 심보”(강민국 수석대변인), “명분 없는 단식의 출구전략으로 내각 총사퇴를 들고나오는 것은 화성인이 아니고는 상상하기 힘든 일”(장동혁 원내대변인)이라며 맞불 공세에 나섰습니다. 대통령실도 “누가 단식하라 했나” “막장투쟁”이라며 비판 대열에 가세하자 민주당이 또다시 발끈해 “인면수심의 정권”이라고 비판하는 등, 정말 끝이 보이지 않는 뫼비우스의 띠 같습니다.

결국 이 대표가 밥을 굶다가 병원에 강제로 실려 가는 과정을 전 국민이 무슨 볼모인 양 지켜봐야 했습니다. 인사말이 ‘밥은 먹었냐’일 정도로 ‘밥심’으로 살아가는 한국인에겐 큰 스트레스였습니다. 가뜩이나 기분 좋은 뉴스도 없는 마당에 올해 추석 밥상엔 이 대표의 건강 상태까지 오르게 생겼습니다. 제1야당 대표의 지극히 이기적인 단식이 힘없는 약자들을 위한 최후의 투쟁 수단이라는 단식마저 한없이 불편하게 만들어버린 듯합니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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