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은 ‘경기지사 징크스’를 끊어낼 수 있을까[한상준의 정치 인사이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27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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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연 경기도지사가 8일 오전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 경기도지사실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수원=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꽤 좋게 나왔던데 세부 데이터 좀 구할 수 있을까요?”

동아일보가 내년 4·10총선을 300일 앞두고 실시한 수도권 여론조사 결과가 보도된 뒤, 한 야권 인사는 통화에서 “수도권 광역자치단체장 직무수행 평가 결과가 눈에 띄더라”며 이같이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김동연 경기도지사, 유정복 인천시장 모두 긍정 평가가 40%대를 기록했지만, 세부 내용을 뜯어보면 김 지사의 성적표가 유독 괜찮았다는 의미다.

여기에 김 지사는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한 차기 대선 주자 평가에서도 약진했다. 지금 여의도의 관심은 채 1년도 남지 않은 22대 총선에 쏠려 있지만, 물밑에서는 2027년 대선을 향한 경쟁도 이미 시작된 상황. 자연히 인구 약 1361만 명(5월 말 기준)으로 전국 최대 광역자치단체인 경기도의 도정을 관할하는 김 지사의 행보를 두고 정치권의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김 지사는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주축 세력인 친명(친이재명)도, 친문(친문재인)도, 86그룹(80년대 학번, 60년대생)도 아닌 독특한 정치적 위치를 갖고 있다.

● 김동연, 중도-보수 유권자층에서도 ‘긍정’이 높아
동아일보가 실시한 수도권 광역자치단체장 직무수행 평가에서 김 지사는 긍정 평가 48.5%, 부정 평가 19.5%를 기록했다. 오 시장은 긍정 평가(44.2%)와 부정 평가(41.4%)가 오차범위 내를 기록했고, 유정복 인천시장은 긍정 평가(41.9%)가 부정 평가(33.9%)보다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 ±3.5%포인트. 응답률은 서울 경기 9.0%, 인천 9.6%.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고).


유일한 야당 소속 수도권 광역단체장인 김 지사가 가장 낮은 부정 평가를 기록한 것. 특히 김 지사는 진보 성향의 유권자는 물론이고 중도, 보수 성향의 유권자들로부터도 후한 평가를 받았다. 자신의 이념 성향이 ‘중도’라고 답한 경기도민의 50.3%는 김 지사의 도정 운영에 대해 긍정 평가를 내렸다. 보수 성향의 경기도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긍정(39%)이 부정(32.4%)보다 높았다.

차기 대선 후보 지지도 조사에서도 김 지사는 안방인 경기도에서 가장 선전했다. 경기도민 802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차기 대선 후보 지지율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31.3%), 한동훈 법무부 장관(15.3%), 오 시장(12.1%), 홍준표 대구시장(7.2%) 순이었다. 그리고 5위 김 지사(6.0%), 6위 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5.1%)로 집계됐다. 서울, 인천, 경기 지역 조사에서 김 지사가 5위권 내에 입성한 건 경기가 유일했다. 이에 대해 야권 관계자는 “큰 격차는 아니지만 경기 지역 유권자들이 김 지사에게 눈길을 주고 있다는 의미라고도 볼 수 있다”고 했다.

● 민주당 입당 1년 만에 ‘대안’ 부상

이런 조사 결과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차기 대선 여론조사 추이 등에 대해서 큰 신경을 쓸 상황은 아니다”라면서도 “김 지사의 투자 유치 등 성과나 안정적 도정 운영, 공직사회 혁신 노력에 대한 평가와 기대치가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 지사 주변에서는 “각종 여론조사의 추이를 보면 김 지사가 야권 정치인으로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여론조사기관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16일부터 17일까지 실시한 조사 결과 ‘이 대표의 대안은 누구인가’를 묻는 질문에 김 지사는 이 전 대표, 김부겸 전 국무총리 등과 각축을 벌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재인 정부의 초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인 김 지사는 사실 민주당 소속이 된 지 1년 남짓밖에 지나지 않았다. 정치권에 발을 들인 지도 채 2년이 안 됐다. 반면 행정 관료로 살아온 세월은 훨씬 길다.

덕수상고를 졸업한 그는 1982년 행정고시에 합격하며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경제기획원(현 기재부) 사무관부터 경제부총리까지 오른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이다. 보수, 진보 정권이 교차하는 동안에도 그는 승승장구했다. 경기도지사 취임 1년을 맞아 진행된 프레시안 인터뷰에서 김 지사는 공직 생활에 대해 이같이 설명했다.

“제가 대통령을 여섯 분 모셨다. 김영삼 대통령부터 김대중 이명박 대통령도 청와대에서 모셨다. 노무현 정부 때는 기재부 국장을 하면서 ‘비전2030’을 만들었고, 박근혜 정부 때는 장관급 국무조정실장을 하면서 2주에 한 번씩 대통령에게 보고를 했다. 문재인 정부 때는 제가 경제부총리를 했으니 (대통령) 여섯 분을 모신 셈이다.”

경제부총리를 끝으로 공직을 떠났지만, 선거 때마다 여의도에서는 ‘김동연’이라는 이름이 회자됐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경제 전문가도 찾기 어렵지만, 청계천 무허가 판자촌 출신으로 부총리까지 오른 사람이 지금 대한민국에 몇 명이나 있겠나”라고 했다. 민주당에서는 2020년 총선,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김 지사 출마설이 나왔다. 하지만 그는 제3의 길을 택했다. 2021년 9월 ‘새로운물결’을 만들어 대선 도전을 선언한 것.
다만 독자 노선은 오래가지 못했다. 김 지사는 지난해 3·9대선 직전 이 대표와 단일화를 선언했다. 이후 새로운물결은 민주당과 합당했고, 그는 지난해 6·1지방선거에서 민주당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가 당선됐다.

경기도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김 지사는 지난해 3월 도지사 출마 선언에서 “제 인생의 절반을 광주, 성남, 과천, 안양, 의왕에서 살았다. 공직과 대학 총장을 하며 20년을 경기도에서 일했다. 누구보다 경기도를 잘 알고,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출마 선언을 경기 성남시 단대동에서 한 것도 유년 시절 청계천 판잣집이 철거되면서 성남으로 강제 이주돼 살았던 곳이기 때문이다.

● 김동연, ‘징크스’와 ‘금기’ 깰 수 있을까

“말 그대로 혈투 끝에 당선됐지만, 김 지사가 경기도를 택한 건 결론적으로 좋은 선택이 됐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스스로 경기를 떠나 인천으로 향하면서 경기도가 무주공산이 됐기 때문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경기 지역 상황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59석(21대 총선 기준)으로 전국 시도 중 가장 규모가 큰 경기도의 맹주가 없는 상황에서 김 지사가 도정을 이끌게 됐다는 의미다.

당초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 출신인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가 경기 출신의 차세대 주자군으로 꼽혀 왔다. 남 전 지사는 경기도청이 있는 수원에서만 내리 5선에 성공했고, 경기도지사까지 지냈다. 하지만 그는 2019년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경기를 대표하는 정치인은 이 대표의 몫이 됐다. 이 대표는 1989년 성남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고, 2018년 남 전 지사를 꺾고 경기도지사가 될 때까지 성남을 떠나지 않았다. 이 대표는 도지사 재임 기간 동안 수원에 있는 경기도청과 경기도지사 공관을 기반으로 대선 도전을 위한 지지 기반을 구축했다.

이를 토대로 집권 여당의 대선 후보 자리까지는 거머쥐었지만, 이 대표도 ‘경기지사 징크스’를 넘지 못했다. 1995년 민선 도지사 시대 개막 이후 임기 1년 만에 구속된 임창렬 전 지사를 제외한 모든 경기도지사는 대권에 도전했지만 승리하지 못했다. 이인제 손학규 김문수 남경필 전 지사에 이 대표까지 더해 5명이 고배를 들었다.

‘경기지사 징크스’ 극복을 위한 또 다른 과제로는 당내 지지 기반 구축이 꼽힌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사실 김 지사가 경제부총리로 일할 때도 청와대, 민주당 사람들과 활발히 교류한 건 아니었다”며 “내년 총선에서 경기 지역 당선자들을 중심으로 ‘친김동연’ 세력 구축에 나서려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여의도 경험이 없었던 이 대표도 경기 지역 의원들이 주축이 된 ‘7인회’를 통해 세 확장에 나서고 대선 후보 자리까지 차지했다.

다만 민주당 안팎에서는 “김 지사가 기존의 정치 문법과 다른 방식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는 말도 나온다. 실제로 김 지사는 대선 도전을 선언하며 ‘정치개혁’을 앞세웠다. 이 대표와의 단일화 발표 당시에도 “경제부총리까지 하면서 아무리 올바른 경제정책을 만들어도 정치가 얼마나 망가뜨리는지 체험했고 그게 정치에 뛰어든 계기였다”고 했다.

또 그는 취임 1주년을 맞아 진행된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1년의 성과로 가장 먼저 “돈 버는 도지사”를 꼽았다. 그간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 진영 정치인들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이다. 김 지사는 “진보는 경제 성장에 유능하지 않다는 관념을 깨려고 했는데, 실제로 시장 원리에 맞게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국내외 투자를 많이 유치했다. 약속한 대로 (임기) 4년 동안 100조 원 이상의 투자 성과를 내겠다”고 했다.

통상 퇴임한 경제부총리들은 정당의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되거나 경제단체장을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김 지사는 그 길을 가지 않았다. 정치에 뛰어들기 전 ‘대한민국 금기 깨기’라는 제목의 책을 냈던 김 지사는 실제로 기성 정치인들과 다른 행보를 꿈꾸고 있다. 김 지사가 징크스와 각종 금기를 깨뜨릴 수 있을지, 아니면 도전 끝에 좌절을 겪게 될지는 3년 후엔 어느 정도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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