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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정치

北, 국경폐쇄에도 최고위층 위해 비타민·로열젤리 수입[주성하의 북카페]

입력 2021-08-29 09:00업데이트 2021-08-2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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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노동당 6차 세포비서대회에서 연설하는 김정은. 그는 자신부터 시작해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7월 북한의 수입품목을 보면 모두 김정은 패밀리와 북한 최고위층을 위한 것들 뿐, 인민을 위한 것은 없었다. 동아일보 DB
북한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을 이유로 국경을 철저히 폐쇄하고 북중 무역을 막았지만, 김정은 일가와 최고위층을 위한 필수품 수입은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민들은 시계용 배터리조차 들여올 수 없어 시간이 멈춰진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김 씨 패밀리는 여전히 자신들만의 호화생활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최근 단독으로 입수한 올해 7월 북-중 무역통계에 따르면 북한은 7월 한 달 동안 1680만 달러(196억5600만 원)어치를 중국에서 수입했습니다. 우리 세관에 해당하는 중국 해관총서가 작성한 이 자료에는 7월 북한이 수입한 150여 가지 품목과 수량, 가격이 1달러 단위까지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수입품 목록과 수량을 살펴보면서 맨 처음 든 생각은 “이 목록은 중앙당 재정경리부가 작성해 자기들에게 필요한 것들만 들여간 것이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왜냐면 수십 가지 항목은 10인 미만의 사람이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소량이고, 다른 것들도 민생이나 대규모 공사와 거리가 먼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코로나 폐쇄 와중에도 북한이 반드시 들여갈 만큼 중요한 것은 김 씨 패밀리와 고위층의 소비를 위한 것 외에 더 있을 것 같지도 않았습니다.

식품, 의약품, 술과 담배 등 기호품, 의류 등의 항목을 살펴보면 의약품 수입 비중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680만 달러 중 의약품이 약 300만 달러어치를 차지합니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인슐린과 코르티코 스테로이드 호르몬 및 그 유도체(코르티손) 수입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는 점입니다. 인슐린은 40만 달러 이상을, 코르티손은 1만7000달러어치를 수입했습니다. 관련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는 “북한이 최근 3년 동안 인슐린과 코르티손 치료제를 들여간 적이 없는데 이번에 압도적으로 많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동안 많은 대북 전문가들이 김정은의 체형으로 볼 때 당뇨와 류머티스 관절염을 앓고 있을 거라고 추정해 왔습니다. 실제로 김정은은 과거 지팡이에 의지해 나타나거나 쩔뚝거리며 부자연스럽게 걷는 모습을 여러 차례 노출했습니다.

북한이 수입한 10여 종류의 의약품 중에 인슐린과 류머티스 관절염에 많이 쓰는 코르티손 관련 약품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면 이런 전문가들의 추정을 뒷받침하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추정에 대해 북한이 수입한 약품이 꼭 김정은을 위해 쓰이는 것이냐는 반론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당연히 가능한 반론입니다. 그런데 의약품 수입 액수를 보면 김 씨 패밀리와 최고위층을 위해 존재하는 봉화진료소에서만 쓰기에도 넉넉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 1년 반 동안 코로나로 인해 북중 국경이 완전히 폐쇄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번에 들여간 의약품 수량은 그동안 점점 비어갔을 봉화진료소 의약품 창고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닌가 추정됩니다.

단일 품목으로는 인슐린과 비타민(약 39만 달러) 종류가 가장 많았고, 각종 항생제들도 수입했습니다. 항생제인 암피실린은 약 9만 달러, 페니실린 약 1만 달러, 세파마이신 6000달러 등입니다. 의료용 밴드 및 드레싱은 1360달러어치 들여갔습니다.

북한의 이번 의약품 수입이 봉화진료소가 아닌 일반 환자들을 위한 것이었다면 밴드를 불과 1360달러어치만 사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도 코로나로 인한 국경 폐쇄의 와중에 말입니다. 7월에 들여간 의약품 품목만 봐도 김 씨 일가와 북한 고위층이 주로 걸리는 병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항생제야 모든 병원의 필수항목이라 생각해 여러 종류를 들여갈 수 있다 쳐도 가장 대표적인 항생제인 페니실린은 불과 1만 달러어치 들여갔는데, 인슐린은 40만 달러나 사갔습니다.

아마 전 세계에서 당뇨병 발병률이 가장 낮은 곳을 꼽으면 북한이 아닐까 싶습니다. 잘 먹지 못하는 데다 각종 동원으로 시달리다보니 북한 사람들은 비만이 아닌 영양실조를 걱정해야 합니다. 북한에서 당뇨병을 걱정할 정도로 잘 먹고 운동을 잘 하지 않는 계층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들여간 의약품은 당뇨병 치표제인 인슐린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이거야 말로 북한 현실과 너무나 판이하게 차이가 나는 역설적 장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항생제 수입 액수에 비해 비타민을 39만 달러어치나 사간 것도 눈길을 끕니다. 올해 상반기 김정은은 수십kg이나 감량된 모습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반적인 방법으로 이렇게 급속히 살을 뺄 수 없다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위절제술을 받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습니다. 위절제술을 받은 사람이 평생 복용해야 하는 것이 각종 비타민이라고 합니다.

이번 수입 품목이 김 씨 패밀리를 위해 특별히 이뤄진 것이라고 추정해 볼 수 있는 다른 항목은 식료품을 들 수 있습니다. 코코아가 들어있지 않는 사탕과자를 불과 2㎏, 209달러어치만 사갔다던가, 로열젤리를 약 1480달러어치 사간 것이 대표적입니다.

국가간 무역에서 특정 브랜드의 사탕 과자와 로열젤리를 209달러, 1480달러어치를 사갔다면 그게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이걸 보고 인민들을 위한 식품 수입이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요. 인조 꿀과 크림 및 설탕 종류도 4425달러어치 들여갔습니다. 북한에는 질 좋은 진짜 꿀도 많을 텐데 굳이 중국에서 인조 꿀을 들여간 것은 특정인의 입맛에 맞추기 위한 것은 아닐까요.

술은 불과 2만 달러어치 들여갔습니다. 김정일의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는 회고록에서 “김정일의 개인 술창고엔 양주만 1만 병이 넘게 저장돼 있다”고 썼습니다. 이를 통해 유추해 볼 때 김 씨 패밀리의 술 창고는 아직 충분히 견딜만한가 봅니다.

반면 담배는 137만 달러어치를 사갔습니다. 이건 김 씨 패밀리만 소비하기엔 상당히 많은 수량입니다. 사실 북한의 대다수 공산품은 질이 조악하기로 소문이 났지만 담배만큼은 꽤 괜찮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충분히 일리 있는 이야기입니다. 북한은 1990년대 초반부터 2010년경까지 약 20년 동안 위조담배 판매에 큰 힘을 쏟기도 했습니다. 외국에서 담배 생산 설비와 생산 노하우를 들여와 유럽과 미국, 일본 등의 유명 브랜드 담배를 위조해 해외에 몰래 팔았던 과거가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북한의 담배 생산 능력은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왔습니다. 이런 북한이 하필 담배를 137만 달러나 사간 것은 얼핏 이해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노동당 39호실이 운영하는 평양의 주요 외화상점에서 각종 해외 브랜드의 담배가 매우 중요한 판매항목임을 감안할 때 담배 수입은 김 씨 패밀리를 위한 것이 아닌 내수 달러를 흡수하기 위한 판매용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또 각종 옷감용 천도 100만 달러어치 사갔는데 이것은 열병식이나 각종 행사를 위해 특별히 주문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정은이 회의를 열면 간부들도 김정은과 스타일이나 색깔까지 똑같이 맞춘 옷을 입고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것을 위한 수입품목일 수도 있습니다.

150여개 품목 중엔 천을 씌운 금속 재질의 접이식 의자도 개당 100달러씩 5개 사들여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건 무엇일까요. 일반 간부를 위해 특정 접이식 의자 5개를 사가진 않겠죠. 김정은이 외부 현지시찰을 갔을 때 앉기 위한 의자이거나 바닷가에서 피서를 즐길 때 필요한 접이식 의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과거 김정은이 군부대를 시찰할 때 철제 프레임에 천을 씌운 의자에 앉아 참관하는 사진이 종종 나옵니다. 이 의자가 낡아 새로 수입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또 수입품목 중에 2800달러짜리 피아노도 1대 들어있는 것이 눈길을 끕니다.

수입 항목 중에는 인테리어를 위한 항목도 꽤 있습니다. 가령 목재가구(1만2000달러) 철제가구(1900달러), 플라스틱가구(3000달러) 석조가구(350달러) 등이 포함돼 있습니다. 액수만 보면 이 가구들은 방 몇 개 정도를 인테리어 할 정도에 불과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김정은이 회의할 때마다 회의장 인테리어가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것들도 그렇게 회의장을 새 단장하기 위한 가구들이 아닐까요.

북한의 150여개 수입항목에서 예외적으로 액수가 많은 것이 딱 한 가지 있습니다. 공기 주입식 타이어를 무려 약 475만 달러어치나 사갔습니다. 사실 타이어는 현재 북한 실정을 볼 때 매우 중요한 품목이긴 합니다. 최근 김정은의 지시로 평양 시내에 벌여놓은 각종 공사에서도 타이어가 없으면 기계 장비들이 투입될 수가 없습니다.

공사용 타이어일 수도 있지만, 김정은의 경호와 중앙당 간부들의 의전을 위해서도 막대한 양의 타이어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김정은이 시찰을 나가면 경호부대가 며칠 전부터 출동해 그 지역을 4겹으로 에워싸고 개미 한 마리 드나들 수 없게 만듭니다. 우리는 북한 매체에서 김정은의 현지시찰 사진만 보지만, 그 한 번의 시찰을 위해 수백, 수천 명의 경호부대가 차량을 타고 움직입니다. 그러니 김정은 경호를 위해서도 타이어 수입은 불가피한 것입니다. 그밖에 중앙당 간부들의 차량을 운용하기 위해서도 타이어는 많이 필요하겠죠.

북한이 7월에 중국에서 수입한 1680만 달러어치 150여개 품목 중에는 민생을 위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요즘 북한 내부 사정은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굶어죽는 사람들이 나온다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그런데 수입품목만 보면 인민들은 코로나 방역을 핑계로 장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하고 일체의 수입과 밀수를 허용하지 않으면서, 김 씨 일가만은 필요한 것들은 다 알아서 사다 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난 4월 9일 김정은은 노동당 세포비서대회에서 “나는 당중앙위원회로부터 시작해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폐쇄 와중에 몰래 들여간 7월의 수입품목을 보면 이 말이 거짓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북한이 존재하는 이유를 아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김 씨 왕조를 위해 존재합니다.

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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