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순간에 사그라든 ‘여성징병제’…여군 실태 너무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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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6월 9일 07시 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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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19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여성도 징병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 청원글. (‘청와대 국민청원’ 갈무리) © 뉴스1
지난 4월19일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온 ‘여성도 징병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 청원글. (‘청와대 국민청원’ 갈무리) © 뉴스1
최근 ‘성추행 피해’ 여군 부사관 사망 사건이 불거지며 한동안 들끓었던 ‘여성징병제’ 논란이 일순간 사라진 모습이다. 군이 남성 중심의 문화를 탈피하지 못한다면, 여성징병은 애초에 실현될 수 없다는 여론 때문으로 풀이된다.

앞서 여성징병제 논의는 지난 4월 대선 출마를 앞둔 정치인들로부터 촉발됐다. 여기에 청와대 국민청원에 여성징병을 촉구하는 내용의 청원이 호응을 받으며 논의가 확산됐다.

지난달 19일 마감된 해당 청원엔 총 29만3140명이 동의했다.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의 답변에 필요한 20만 명을 훌쩍 넘긴 수치다.

이와 더불어 여성 의무복무를 주장하는 국회 국민동의 청원 글도 지난달 14일 10만 명 동의 조건을 채웠다. 이에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방위원회에 공식 회부가 예정됐다.

하지만 최근 공군에서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던 여성 부사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되며 유의미한 논의로 이어질 가능성이 낮아졌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 조직은 여전히 남성 중심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 여성징병제 논의가 여군의 실태를 이해하지 못한 채 ‘불공정’ 해소만을 이유로 악용됐단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이남자(20대 남자)’ 표심 잡기에 나선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적 공약이었단 비난도 일고 있다.

다만 일각선 해묵은 논쟁인 여성징병제를 이번에도 해소하지 못한다면 또다시 ‘젠더 갈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여성징병 논란에 대한 대답을 미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논란에 마침표를 찍어야 할 때라고 주장하고 있다. 군 조직이 여성에 적합하지 않다는 변명 대신 여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군 조직을 만드는 게 우선이라는 목소리다.

또 군이 여성 친화적인 조직으로 탈바꿈하고, 여군의 숫자가 늘이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성범죄 예방은 물론 향후 모병제 도입도 수월해질거란 주장도 제기된다.

방혜린 군인권센터 상담지원팀장은 “여성징병 논의가 나오며 정작 육군사관학교에 여성 비율이 10%로 제한돼 있다거나, 여성 부사관 고용률이 낮게 책정돼 있단 점은 부각되지 않았다”며 “(여성징병 논의가) 보복식 징병 요구에 그칠 것이 아니라 우리 여군의 실태를 점검할 수 있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7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이모 중사의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이 조문을 하고 있다. 2021.6.7/뉴스1 © News1
7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공군 성추행 피해 부사관 이모 중사의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이 조문을 하고 있다. 2021.6.7/뉴스1 © News1
방 팀장은 또 군내 여성의 비율이 높아지면 성범죄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에 동의하면서도 “군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이 남성에 치우쳐있어 (현재) 여군들은 스스로의 여성성을 삭제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양성을 평등하게 바라보는 군 조직 문화가 우선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2019년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보면 남성 간부와 여성 간부가 느끼는 인권침해 요소엔 차이가 있다. 남성 간부의 경우 부당한 대우로 ‘사적인 명령(16.8%)’과 ‘언어폭력(13.5%)’ 등을 꼽았지만, 여성 간부는 ‘차별(26.4%)’을 가장 많이 꼽았다.

또 다른 한편에선 병역의무 이행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짚고 넘어가야 여성징병이 더 이상 갈등으로 소비되지 않을 수 있단 분석도 제기된다.

다만 헌법재판소가 1999년 ‘군 가산점’ 제도를 장애인과 같은 소수자에 대한 ‘역차별’로 작용할 수 있다며 위헌 판결을 내린 만큼, 20년도 지난 판결에 매달릴 것이 아니라 월급 인상과 학업 병행 등을 논의하는 방식이 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봤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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