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몇년 만에 처음 진전 이뤄져”… 北-美 대화 수용 시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남북 정상회담-비핵화 대화 합의]南北美 비핵화 논의 급물살

정의용, 김정은에 文대통령 친서 전달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5일 자신의 집무실이 있는 평양 
노동당 본관 진달래관에서 수석특사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김정은이 우리 정부 인사와 한 첫 악수다. 김정은
 왼손에는 정 실장이 전달한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가 들려 있다. 오른쪽은 김정은 동생 김여정. 왼쪽부터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청와대 제공
정의용, 김정은에 文대통령 친서 전달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5일 자신의 집무실이 있는 평양 노동당 본관 진달래관에서 수석특사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악수하고 있다. 김정은이 우리 정부 인사와 한 첫 악수다. 김정은 왼손에는 정 실장이 전달한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가 들려 있다. 오른쪽은 김정은 동생 김여정. 왼쪽부터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서훈 국가정보원장, 천해성 통일부 차관. 청와대 제공
남북이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 천명과 대화 기간 중 핵·미사일 도발 중단을 담은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한반도 정세가 급격한 전환기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미사일 모라토리엄 선언을 넘어 비핵화 대화 추진에 합의하면서 북-미 대화 성사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이번 합의에 대한 북한의 구체적인 요구 조건은 아직 드러나지 않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일(현지 시간) 대북특사 활동에 대해 “북한과의 대화에서 진전이 일어나고 있다”고 이례적인 평가를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르면 8일 워싱턴으로 향하는 우리 특사단의 설명, 특히 김정은의 미공개 제안을 접한 뒤 긍정적인 행보를 이어간다면 ‘평창 모멘텀’은 북-미 대화 또는 접촉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 김정은, 조건부 핵 모라토리엄으로 일단 화답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6일 특사단의 방북 결과에 대한 언론발표문에서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 말했다.

김정은은 특사단과의 만찬에서 비핵화에 대해 ‘선대의 유훈’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정 실장은 “비핵화 목표는 선대의 유훈이다. 선대의 유훈에 변함이 없다는 걸 (김정은이) 분명히 밝혔다”고 전했다. 비핵화 문제에 대해 기존 입장을 재차 언급하는 형태로 미국이 제시한 북-미 대화 조건을 맞추려 한 셈이다.

정 실장은 또 “대화가 지속되는 동안 북측은 추가 핵실험 및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등 전략도발을 재개하는 일은 없을 것임을 명확히 했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비핵화 협상에 들어가기 전 사전 신뢰회복 조치로 핵·미사일 도발 중단(모라토리엄)을 선언한 것.

청와대는 이번 합의를 문재인 대통령이 제안한 비핵화 방법론에 대해 김정은이 수용 의사를 밝힌 것이라고 보고 있다. 김정은은 정 실장 등 대북 특사단이 비핵화 방법론에 대해 얘기를 꺼내자 “걱정하지 말라”며 이번 합의 사항을 먼저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합의 사항은 문 대통령이 지난달 방한한 북한 고위급 대표단에 전한 내용들이 뼈대를 이룬 것”이라며 “북한이 비핵화 문제를 푸는 방식을 미리 고민해 준비해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진전 있다”는 트럼프, 김정은 제안 받을지가 핵심

이제 관심은 북-미 대화 성사 가능성에 쏠리고 있다. 정 실장이 김정은에게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받고 워싱턴으로 향하는 만큼, 여기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반응이 대화 기조를 이어갈 리트머스시험지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핵 포기의 조건으로 ‘미국의 군사적 위협 해소’를 내건 것을 보면 미군의 전략자산 한반도 배치 철회는 물론이고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의견을 담은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김정은이 남북 교류 활성화를 강조한 만큼 대북 제재 완화가 들어 있을 수도 있다. 북한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정상국가로서 제대로 인정해달라’는 요구를 할 수도 있다.

트럼프의 1차적 반응을 보면 어느 정도 기대를 갖게 한다. 트럼프는 이날 특사단의 발표가 나온 뒤 2시간 만에 트위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보겠다”고 한 뒤 “북한과의 대화에서 진전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진지한 노력이 (북핵) 관련국들이 참여한 가운데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한 뒤 “세계가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자신이 취임 후 전개해 온 대북제재가 효과를 발휘했고 김정은을 비핵화로 이어질 수 있는 대화의 장으로 이끌어냈다는 자평이다. 그러면서도 “이런 게 헛된 희망일 수도 있지만, 미국은 (외교적 해법이든, 군사적 옵션이든) 어떤 방향으로든 열심히 갈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북-미 대화가 실질적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또다시 군사적 옵션 카드를 꺼낼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정은이 신년사에서 핵보유국 선언까지 한 만큼 실제 비핵화로 가는 길은 험난할 수밖에 없다. 워싱턴의 한 소식통은 “당장 북-미 간 대화를 시작할 여건이 마련됐다고 보는 분위기이지만 대화를 하는 것과 비핵화를 이루는 데는 아직 상당한 간극이 존재한다”며 “양측 간에 존재하는 오해와 불신을 해소하면서 그 차이를 메우는 데 문재인 정부의 역할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은 남북 간의 급속한 대화 기조를 경계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미일 동맹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五典) 일본 방위상은 남북 합의에 대해 “북한의 핵·미사일 정책 변화가 확인되지 않는 한 대북 압박을 약화할 이유가 없다”며 “회담 결과가 북한의 핵·미사일 포기로 이어질지 앞으로 신중하게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병기 weappon@donga.com·한상준 기자 / 워싱턴=박정훈 특파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