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분권·협치 정치개혁으로 내년 개헌 길 밝혀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5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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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에게 바란다(5·끝)

김대중 노무현 진보정권 10년, 이명박 박근혜 보수정권 9년 끝에 국민이 다다른 결론은 제왕적 대통령제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에서 최순실 국정 농단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막장 드라마였다. 진보건 보수건 어떤 대통령도 친인척 및 측근 비리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만은 다르다고 여기고 이 시대에 과제로 주어진 정치 개혁을 소홀히 한다면 그의 미래도 나라의 미래도 어둡다.

문 대통령이 지난주 취임한 후 사실상 첫 일이었던 청와대 개편의 결과 정책실장이 신설돼 청와대 내 장관급 직책이 두 자리에서 세 자리로 늘었다. 외교안보수석이 폐지돼 안보실로 통합되긴 했지만 일자리수석이 새로 생겼다.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작은 청와대 구상에 따라 각 부처에 힘을 싣겠다”고 했지만 구상대로 되지 않았다. 아직 판단하기에는 성급한 감이 있지만 더 커진 청와대 아래서 각 부처에 얼마나 힘이 실릴지 두고 볼 일이다.

문 대통령은 대선 기간 중 TV 토론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법을 지키지 않아 제왕적 대통령이 됐다”며 “책임 총리, 책임 장관제를 통해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고 했다. 실제 취임 후 이낙연 총리 후보자가 제청권을 행사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 절차를 거쳐 임명동의를 받기까지는 2∼3주가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가 정식 총리가 된 뒤 제청권을 행사하면 장관 인사가 늦어질 가능성이 크다. 작은 청와대가 물 건너간 지금 이 후보자가 실질적 제청권을 행사할 수 있을지가 대통령의 권한 분산 의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가진 행정권을 분산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당청관계를 수직에서 수평으로 바꾸는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양김 시대를 끝으로 대통령이 정치자금을 통해 여당을 좌지우지하던 시대가 종결됐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의 대통령도 친노(친노무현)·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의 계파를 통해 당정일치의 권력을 추구해왔다. 10년 만에 집권 여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이 내일 새 원내대표를 뽑는다. 경선은 우원식 의원과 홍영표 의원의 2파전으로 압축됐다. 우 의원은 범친문(친문재인), 홍 의원은 친문이라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문 대통령이 당을 좌지우지하겠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는 한 당이 청와대의 하부기관으로 전락할 위험은 상존한다.

문 대통령은 취임 전에 “국회를 존중해 견제 기능을 살려줘야 한다”고 말했으나 민주당 정부가 기본이라는 기조에는 변함이 없다. 집권 여당을 중심으로 책임정치를 하겠다는 것은 원칙적으로는 옳다. 그러나 현재 민주당은 국회에서 절반에 30석이 모자란 120석밖에 갖고 있지 않다. 국회선진화법으로 쟁점 사안의 결정은 180표를 필요로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힘으로’를 강조하는 것은 실효성도 없을 뿐더러 결국 국회를 다시 극렬한 갈등의 장으로 만들 가능성을 높인다. 연정에 대해 보다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문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모든 정치개혁의 귀결점은 개헌이다. 대선 과정에서 모든 주요 후보들이 내년 6월 지방선거에 맞춰 개헌을 하자는 데 공감을 표시했다. 문 대통령도 처음에는 개헌이 선거에 정략적으로 이용된다며 주저하다가 개헌 물결에 합류했다. 임 비서실장은 임명된 직후 정우택 자유한국당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를 만나는 자리에서 “1년 뒤 개헌을 염두에 두고 정부조직법 개편을 최소화하겠다”고 말했다. 새 정부는 개헌을 염두에 두고 모든 정책을 입안하고 추진해야 할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권한이 약화된 새로운 권력구조로 가는 과도기에 자신에게 주어진 시대적 사명을 인식해야 한다. 국회에 선진화법이 도입된 것은 대통령과 다수 여당의 합작을 차단해 대통령이 전횡할 여지를 없애기 위한 것이다. 87년 헌법하에서 어떤 당도 단독으로 국회선진화법이 요구한 180석을 차지한 적이 없다. 민주당이 설혹 과반 정당이라 하더라도 다른 정당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것은 스스로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국회에 더 많은 권한을 줌으로써 개헌 이후를 준비하는 것이다.

87년 헌법 도입 이후 30년이 지났다. 87년 헌법이 민주주의의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은 틀림없으나 국민의 눈높이가 높아지고 국내외 환경이 급변하면서 그 시대적 소명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주어진 골든타임은 1년이다. 개헌은 대통령이 정략적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의 대표로서 주도하지 않으면 성사되기 어렵다. 대한민국의 새로운 틀을 짜는 개헌을 대과 없이 성사시킨다면 문 대통령의 큰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정치개혁#개헌#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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