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전승훈]‘블루 하우스 다운, 청와대 최후의 날’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전승훈 문화부 차장
전승훈 문화부 차장
 2013년에 개봉한 영화 중에 ‘화이트 하우스 다운’ ‘백악관 최후의 날’이란 액션 영화가 있다. 할리우드 영화가 미국 백악관까지 폭파시키자 최후의 성역이 무너졌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요즘 한국의 상황도 ‘블루 하우스 다운’ ‘청와대 최후의 날’을 방불케 한다. TV 뉴스는 어떤 영화보다도 스펙터클하다. 영화 속 백악관처럼 테러 공격을 받지 않았는데도, 청와대는 내부에서 스스로 무너지고 있는 중이다. 

 제이미 폭스가 대통령 역을 맡은 ‘화이트 하우스 다운’은 백악관의 내부 구조를 속속들이 알 수 있는 영화다. 테러 공격을 받은 대통령이 엘리베이터 통로에 숨어 있다가 위층의 관저 침실로 올라가는가 하면 집무실과 식당, 지하 군사벙커까지 한 건물 안에서 종횡무진 뛰어다닌다.

 한국의 청와대라면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다. 대통령 집무실(본관)과 관저, 직원들이 근무하는 건물(위민관)이 각각 500m씩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걸어서 15분, 차로도 5분씩 걸리는 거리다. 경비초소도 2개나 거쳐야 한다.

 2013년 33년 만에 청와대로 돌아온 박근혜 대통령은 6000여 m²의 대규모 관저에서 홀로 지내 왔다. 16년 동안 청와대에서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보냈던 박 대통령에게 청와대는 집무실보다 관저가 익숙했을 것이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대통령의 관저는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가 잉태될 수 있었던 공간적 배경이다.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경험자에 따르면 YS, DJ, 노무현, MB 등 역대 대통령들도 관저에서 업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비서실장이 한밤중에도 잠옷 차림의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고, 새벽에 관저에 찾아가 대통령과 함께 집무실로 출근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는 이런 관행이 힘들어졌다. 박 대통령이 관저에 들어가 올림머리 헤어스타일을 풀어헤친 이후엔 대면보고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여성 대통령의 특수성’을 감안한다면 박 대통령은 더욱더 출근 시간을 지키고 집무실 정위치에서 근무했어야 했다. 그랬으면 ‘세월호 7시간’ 같은 비극은 없었으리라.

 조선시대 경복궁에서도 왕의 침전인 강녕전은 집무실인 사정전과 담 하나를 사이에 둘 정도로 가까웠다. 그래도 왕은 오전 7시부터 의관을 갖추고 신하들과 함께 하는 공부인 조강(朝講)을 하며 공식 일정을 시작했다. 세종대왕이 침소인 강녕전에서 훈민정음을 창제했듯이 왕은 침전에서도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이제 국민들은 ‘포스트 박근혜’를 준비한다. 이렇게 큰 사태를 겪고도 다시 과거로 돌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중에 하나가 바로 청와대를 바꾸는 일이다. 청와대는 일제강점기 총독부 관저 자리였다. 북쪽이 산으로 가로막힌 요새 형태의 청와대는 식민지 시대, 군부독재 시대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치기 위한 개헌이 논의되는 만큼 청와대를 산속이 아닌 도심으로 옮겨야 한다.

 청와대를 여의도로 옮겨 대통령이 국회와 수시로 논의할 수 있게 하면 어떨까. 영국 총리 공관인 다우닝가 10번지는 웨스트민스터 의사당 인근 주택가에 있다. 공관에는 총리 사무실이나 책상도 없다. 총리는 상시로 열리는 국회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의 집무실도 연방의회 의사당을 마주 보고 있다.

 청와대를 세종로 한복판으로 옮기는 것도 좋겠다. 자칫 잘못하면 민심의 촛불 파도에 휩싸일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국정을 펼칠 수 있도록 말이다.
 
전승훈 문화부 차장 raphy@donga.com
#화이트 하우스 다운#백악관 최후의 날#청와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