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중재법 개정안 “기사내용 사실이어도 개인 사생활 침해땐 수정-삭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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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학계 “언론자유 침해 개악”
DB보관 기사까지 삭제 명령… 중재기구가 위법성 판단 권한남용
새누리 의원 10명 개정안 발의… 언론중재위案 대리입법 의혹도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도 개인의 인격권과 사생활의 핵심 영역이 침해됐다면 언론사 데이터베이스의 기사 원본까지 수정 삭제할 수 있도록 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언론자유 침해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이 개정안은 최근 곽상도 의원 등 새누리당 의원 10명이 발의했다.

 언론중재위원회(중재위)는 6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새로운 언론피해구제제도 도입을 위한 언론중재법 개정안’ 세미나를 개최했다.

 주제 발표를 한 권오근 언론중재위원회 운영본부장은 “인터넷과 모바일의 급속한 발전으로 개인의 인격권과 사생활에 피해를 주는 기사가 나오면 걷잡을 수 없이 퍼지고, 기사를 지워도 댓글 등으로 2차 피해를 받기 때문에 기사 외에 추가 삭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 본부장은 또 “언론사 데이터베이스에 있는 기사가 확산되지 못하게 하는 조항도 향후 잠재적 피해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개정안에 따르면 중재위가 기사 내용이 개인의 인격권과 사생활의 핵심 영역 등을 침해했다고 판단한다면 기사, 댓글, 블로그·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게시글은 물론이고 언론사 보관 기사까지 삭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조항은 언론자유의 침해 가능성이 다분하다는 게 언론 및 학계의 지적이다. 한국신문협회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 3단체는 6일 성명을 내고 “언론기사는 사실과 일치하는 보도든, 오보(誤報)든, 정정·반론보도든 역사적 기록물로 보존돼야 한다”며 “시비가 있는 기사라도 인터넷 검색 차단을 넘어 언론사의 기사 원본을 수정·삭제하도록 하는 조치는 언론자유와 알 권리를 본질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잊혀질 권리’의 대표적 예로 꼽히는 스페인 변호사 곤살레스 건에 대한 유럽사법재판소(ECJ)의 판결에서도 문제 기사에 대해 “구글 검색 결과에서 기사 링크를 배제하라”고만 했을 뿐 언론사 기사 원본이나 이용자 게시물의 삭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방송통신위원회는 6월 발표한 ‘잊혀질 권리’ 관련 가이드라인에서 개인의 권익을 침해한 게시물에 대해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검색에서만 제외하는 조치를 하도록 하고 있다.

 또 개인의 인격권과 사생활 침해 등에 대한 위법성 판단을 사법부가 아닌 중재기구인 중재위가 하겠다고 나선 것도 권한 남용이라는 지적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중재위가 사실상 사후 검열까지 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언론 3단체는 성명에서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 보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별장 성접대 의혹 보도, 세월호 사건 당시 박근혜 대통령 7시간 관련 보도, 최순실 게이트 중 최 씨 일가의 사생활 보도 등을 사례로 들며 “사생활의 핵심 영역이 무엇인지, 인격권을 얼마나 침해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그 공동체의 상식과 직관에 따라 달라진다”며 “사실인 기사의 원본 삭제나 검색 차단에 대한 판단 기준 역시 중재위가 아니라 법원 판결을 통해 형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재경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미국에서는 기자들이 일부 오류를 범하더라도 권력 감시를 위해 보도를 제한해선 안 된다며 ‘숨 쉴 공간(breathing room)’을 마련하자는 상황인데 우리나라는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 개정안은 중재위가 지난해 10월 발표했던 개정안과 유사해 사실상 대리 입법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언론 3단체는 성명에서 “중재위는 의원입법 형식을 빌리면서 문화체육관광부와의 협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 절차적 정당성에도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언론중재법#개정안#새누리#발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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