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극복 前경제사령탑들, 현 시국에 쓴소리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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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념 “위기극복 리더십 있나”… 강봉균 “경제의 정치중립 확보할 기회”
이규성 “신뢰는 실적 쌓일때 생겨”
축사 참석 유일호 “힘들다” 토로에 이헌재 등 “최선 다하고 책임져야”

 1997년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해 냈던 경제 사령탑들이 리더십과 소통의 부재를 우려하며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들은 지금의 정치적 불안을 경제 구조의 체질 개선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30일 오후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코리안 미러클 4: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어’ 발간회에 외환위기 당시 한국 경제를 이끌었던 전직 경제부총리 등 고위 관료들이 모였다. 코리안 미러클 4는 이들의 인터뷰를 통해 외환위기 극복 과정을 담아낸 책이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젠 코리안 미러클이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기 쑥스럽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정치 민주화를 다 이룬 것처럼 착각했고 경제 구조 개혁의 기본 토대도 튼튼히 구축했다고 자부했지만 성장 잠재력은 날로 약화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진념 전 경제부총리는 “(외환위기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바탕은 팀워크였고 대통령과 경제팀이 토론하고 소통하며 방향을 잡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그런 리더십이 있는지는 여러분이 판단할 문제”라며 현재의 리더십 공백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이규성 전 재정경제부 장관도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데 가장 큰 자산은 신뢰”라고 지적했다. 이어 “불확실성이 큰 지금은 ‘시계비행’밖에 못 한다”며 유연한 대응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는 “한 나라의 위기관리나 국가 경영에 있어 처음 시작한 대로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며 “최선을 다하고 책임을 지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위기에 대응하려면 재정에도 항상 충분한 ‘버퍼(buffer·완충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직에 몸담고 있는 후배들에 대한 질타도 이어졌다. 진 전 부총리는 “요즘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는 말을 많이 한다”며 “‘최순실 예산’에 막대한 돈을 지원했는데도 왜 이후에 이걸 챙기는 사람이 없었느냐”며 가슴 아파했다.

 이날 축사를 하기 위해 참석한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선배님들께선 이런 상황을 안 겪어봐서 모르신다. 힘들다”고 토로하자, 진 전 부총리는 “나갈 때 나가더라도 그런 얘기를 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위기가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강 전 장관은 “정치로부터 중립적인 경제 체제를 구축하고 국가 거버넌스 시스템을 민주적으로 바꿀 수 있는 찬스”라며 “쉽게 오지 않는 이 기회를 놓쳐선 안 된다”고 말했다.

 진 전 부총리는 이참에 기업에 대한 정치권력의 족쇄를 끊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세청 세무조사, 검찰 조사 등 우리나라처럼 기업들이 정치권력에 휘둘리는 나라는 없다”며 “우리 기업들을 정치권력의 족쇄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시스템의 혁신이 있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
#외환위기#경제#위기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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