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의 오늘과 내일]북핵과 박 대통령의 언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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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부국장
박성원 부국장
 “지금 우리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엄중한 안보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북한이 고도화된 핵과 미사일 능력을 바탕으로 어떤 형태의 도발이라도 할 수 있는 위험한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가 현실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22일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한 이 같은 발언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이런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뒤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과 관련한 야당의 의혹 제기를 비판하는 듯한 말을 덧붙인 데서는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권력 핵심부 연루설이 나도는 재단이 신청 하루 만에 설립 허가가 나고 대기업들이 단번에 800억 원에 육박하는 거액을 조율이나 한 듯이 내놓았다 해서 정치적 논란이 큰 사안을 굳이 안보문제에 연결시킬 필요가 있었을까?

 “국가 안보와 국민 안위를 지키는 문제는 정쟁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거나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맞서 국민이 단호한 자세로 하나가 돼야 한다”는 박 대통령 자신의 말까지 퇴색시킬 수 있는 ‘사족(蛇足)’이라는 생각이 든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다음 날 미르·K스포츠 재단 의혹과 관련해 “유언비어에 대해서는 의법 조치도 가능한 것 아닌가”라고 한술 더 떠 야당을 자극했다.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해임건의안 표결을 앞두고 우왕좌왕하던 국민의당 의원들을 해임안 찬성 쪽으로 돌리는 데 일조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박 대통령의 사족 같은 발언은 ‘메시지의 실패’로 볼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각종 의혹으로 사퇴론에 몰려 있던 7월 21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선 어떤 비난에도 굴하지 않아야 하는 것”이라며 “여기 계신 여러분도 소명의 시간까지 의로운 일에는 비난을 피해가지 말고 고난을 벗 삼아 당당히 소신을 지켜가기 바란다”고 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국민 이해를 당부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지만 여권 내에서까지 적지 않은 우 수석 사퇴론을 일축하고 되레 감싸는 말로 해석되면서 사드 배치에 대한 국민적 설득력을 약화시켰다고 나는 본다.

 국회에서 야당 단독으로 김 장관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24일 박 대통령은 장차관 워크숍에서 “20대 국회에 국민이 바라는 상생의 국회는 요원해 보인다. 우리 정치는 시계가 멈춰 선 듯하고 정쟁으로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일각이 여삼추가 아니라 ‘삼추가 여일각’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조급한 마음”이라고 하고 “이유도 없이 가끔은 눈물나게 억울하겠죠”라는 가사의 ‘달리기’와 “어리석은 세상은 너를 몰라”라는 가사가 들어 있는 ‘버터플라이’를 애청곡으로 소개한 심정도 모를 바 아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이렇게 덧붙였다면 어땠을까. “저는 (여소야대를 낳은) 4·13총선 이후 민의를 겸허히 받들겠다고 말씀드린 걸 여러분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답답하고 억울한 점도 없지 않지만 북핵 대응과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저부터 손을 내밀고 협치를 요구한 국민의 명령을 받들겠습니다”라고. 박 대통령은 정반대로 김 장관 해임안 수용을 거부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도 1996년 15대 총선 이후 탄생한 여소야대 국회와 대화하기보다는 ‘역사와의 대화’에 매달리다 외로운 임기 말을 맞이했다. 지는 게 이기는 거라고, 국정을 책임지고 소임을 완수하기 위해 박 대통령에게 다른 길도 있음을 고언하는 참모는 없단 말인가.

박성원 부국장 swpark@donga.com
#북핵#박근혜#김재수#우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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