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정자]사드, 7월의 작은 日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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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우병시위 때 美 쇠고기… 사드 반대에선 성주참외로
2008년 촛불시위 때처럼 좌파 아이콘 유모차 등장
진보 진영 고매한 교수들은 “전자파보다 한중관계 훼손 걱정”… ‘제2 천안함’이라도 터져야 하나

박정자 객원논설위원 상명대 명예교수
박정자 객원논설위원 상명대 명예교수
광우병 파동에서 미국산 쇠고기가 담당했던 역할을 7월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사태에서는 참외가 맡은 듯하다. 준비라도 하고 있었다는 듯 마침 성주에는, 거기서 20년 넘게 참외 농사를 짓고 있던 윤금순 전 통진당 의원이 있었다. 그는 사드가 배치되면 “앞으로 성주는 사람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된다”며 ‘사드 참외’의 1차적 프레임을 만들어냈다.

주민들을 설득하기 위해 지난달 15일 성주를 방문한 황교안 국무총리에게는 달걀과 물병이 투척됐고, 총리와 국방장관이 몇 시간 동안 감금됐다. 그날 성주 지역 10개 초중고교생 827명이 무더기로 조퇴나 결석을 하고 집회에 참가했다. 당시 모인 3000여 명의 군중 가운데 거의 3분의 1이 학생들이었다. 지나다가 총리에게 말을 하고 싶어서 총리 차를 가로막았다는 사람은 그 위험한 군중 속으로 자기 아이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나왔다. 예이젠시테인의 영화 ‘전함 포템킨’ 이후 유모차는 좌파 시위대의 아이콘이 됐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성주를 방문한 지난달 26일, 군청 앞에는 군민 500여 명이 모여 ‘개작두를 대령하라’ ‘개누리’ 등의 팻말을 들고 심한 욕설을 퍼부었다. 일부는 상복을 입고 곡소리를 내면서 ‘새누리당 장례식’ 퍼포먼스를 벌였다.

성주의 8개 유림단체 회원 128명은 지난달 27일 두루마기와 갓을 착용하고 서울로 올라와 박근혜 대통령에게 ‘상소문’을 제출했다. ‘성주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하고 명현거유(名賢巨儒)가 배출된 추로지향(鄒魯之鄕)인데… 난데없이 사드를 성주에 설치한다는 결정으로… 국가 안보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희생을 강요하면서까지… 현재의 위치를 철회하여 주실 것을 우리 유림단체 회원 일동은 간곡히 엎드려 호소하는 바입니다.’ ‘공자와 맹자의 고향’이라는 뜻의 ‘추로지향’은 학문을 숭상하며 예의를 지키는 고장을 의미한다.

경상도는 좀 더 체제순응적이어서 국가의 안정성에 기여한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에게 성주 주민들의 과격한 반응은 의외였고 당혹스러웠다. 해당 지역 여당 의원들이 단체로 성명을 발표하며 정부를 비판한 것은 더욱 놀라웠다. 성주가 사드 배치 지역으로 공식 발표된 날, TK(대구경북) 지역 의원 21명이 성명을 발표하는 자리에 최경환 정종섭 주호영 등 부총리와 장관을 지낸 실세 친박(친박근혜)계 의원들의 얼굴이 보이는 것은 민망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한국 정치인들에게는 국가 경영의 이념이나 비전은 없고 그저 오직 지역구의 표를 얻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일만이 목적이란 말인가.

군 당국의 과학적 설득 작업으로 사드 참외의 프레임은 곧 동력을 잃었다. 그러자 이제는 전자파가 아니라 한중 관계의 훼손이 문제라는 고매한 전문가와 대학교수들의 견해가 연일 이어졌다. K 교수는, 미국 같은 나라야 조금 잘못 지내도 물건을 팔 수 있지만,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정부의 의지가 곧 시장의 뜻이므로 어떤 형태로든 중국의 보복을 당할 것이라고 했다. M 교수는, 사드 배치를 수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한미 동맹이 깨질 리 없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고 하면서, 박근혜 정부가 어찌 이런 선택을 했느냐고 개탄했다. 엄격한 학문의 사회과학자들이, 미국은 항상 우리 편이어서 우리가 조금 잘못해도 너그러이 대해 줄 것이라는, 유아적 인식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트럼프가 되든 힐러리가 되든 미국이 보호무역주의로 갈 것이 확실하다는 뉴스가 연일 신문을 장식하는 이 시점에도.

S 교수는 한미 군사동맹을 살리려고 한중 역사동맹을 희생시켜야 했느냐고 안타까워했다. 가혹한 조공(朝貢) 관계였던 한중의 역사적 동맹이 뭐가 그리 중요한 것인지 의아했다. 총리도 지낸 바 있는 J 전 교수는 사드 배치로 한미일과 북-중-러가 대립하는 동북아시아 신냉전이 우리 경제의 앞길을 원천 봉쇄할 것이므로, 이런 구도에서 제2의 경제 도약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S 전 외교부 장관은 사드 배치 결정을 기정사실화해서는 안 된다고 하며 폴란드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2008년 미국과 폴란드 두 나라 외교장관이 정식 서명했지만 의회가 반대하여 미사일방어(MD) 체계 배치를 하지 못했고, 그러다가 긴장이 고조되자 2016년 5월에 가서야 MD 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럼 우리도 또 다른 천안함 폭침이나 연평도 포격 같은 사건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죽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가?

박정자 객원논설위원 상명대 명예교수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성주#황굥안#정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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