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성규]‘검찰의 저의가 뭔가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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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규 채널A 사회부 차장
홍성규 채널A 사회부 차장
법조 기자들의 대목은 단연 검찰의 사정(司正) 수사 때다. 내사, 압수수색, 소환, 기소라는 일상적 형사 절차를 두고도 취재 경쟁이 심하다. 특종과 낙종의 경계에서 줄타기를 하는 조마조마한 시기이기도 하다. 그만큼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다. 사회 파급력이 크다는 방증일 것이다.

사정 수사 때마다 반복해 듣는 단골 질문도 있다. ‘검찰 수사의 저의가 무엇이냐’는 것. 취재의 핵심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수사의 주체도 아닌 기자가 답변할 질문인지는 항상 의문이다. 그것도 ‘첫술도 뜨기 전에 맛이 어떠냐’고 묻는 심보라니. 이럴 때를 대비해 내 나름대로 준비해둔 답변도 있다. “범죄가 곧 저의다”라는 것. 검찰이 범죄를 수사하는 건 당연지사라는 말이다.

다분히 음모론을 염두에 둔 질문을 내치는 측면도 크다. 그래도 검찰의 저의는 최고의 취재 유발 동기가 되고는 한다. 최근 검찰의 롯데그룹 수사도 그중 하나다. 우선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흥미롭다. 등 돌린 부자지간, 형제의 난, 몰락한 유통업계 대모…. 오너 일가의 가족사 자체가 흥행요소다. 수사 규모도 이례적이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4부, 첨단범죄수사1부, 방위산업비리수사부까지 매달려 있다. 재계 5위 롯데그룹의 거의 모든 계열사가 도마에 올랐을 만큼 전방위적이다. 이쯤 되면 정말 검찰의 저의가 궁금하다.

정재계에선 갖가지 해설도 난무한다. ‘내수 기업이어서 경제 충격이 덜하다’, ‘정권 후반기를 다지는 재계 군기잡기다’, ‘전 정권을 겨냥했다’, ‘법조비리를 덮기 위해서다’ 등등. 더구나 후속 사정 대상에 대한 예측들도 쏟아지고 있다. 전 정권의 수혜 기업들이라는 추측도 나온다. 문제는 곧이곧대로 검찰 수사를 지켜보는 시선을 찾기 힘들다는 것.

사정 수사의 착수 시기도 입방아에 올랐다. 총선은 피한다는 정치적 계산이 앞섰고, 정운호 게이트에 떠밀린 분위기도 없지 않다. 외면하고 싶은 ‘저의’에 대한 물음이 꼬리를 무는 이유다. 개중에는 지난해 포스코 수사를 떠올린 의문들도 있다. 당시 8개월을 끌고도 빈털터리 수사에 그쳤었다. ‘외과수술식 수사’를 강조한 김진태 전 검찰총장의 방침과도 어긋났다.

바통을 이어받은 김수남 검찰총장도 모를 리 없다. 지난해 12월 취임 일성으로 수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강조했다. “법은 신분이 귀한 사람에게 아부하지 않는다(법불아귀·法不阿貴)”고 말했다. 또 ‘적시에 신속한 수사’도 약속했다. 이번 수사 끝에도 그 약속이 지켜졌길 바랄 뿐이다.

근대 사법제도가 도입된 갑오개혁(1894년)이 있은 지 12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일제강점, 군사정권 등 부침이 컸던 탓일까. 검찰 수사의 독립성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매우 낮은 편이다. 행정부에 속해 청와대-법무부-검찰로 이어지는 상하 구조에서 비롯됐다는 견해도 있다(물론 법무부 장관의 지휘감독권은 검찰권 남용 방지용이기도 하다).

검찰 역시 저의를 의심받지 않는 방법을 모르는 바도 아니다. 그리 많이 거슬러 올라가지 않은 과거 대검 중수부 폐지도 그 일환이었다. 일단 올해 초 가습기 피해 사건 수사가 환영을 받았던 것은 고무적이다. 굳이 외과수술용 칼을 빌려 쓰지도 않았다.

이제 저의를 묻는 질문은 다시 이번 일련의 사정 수사로 향할 것이다. 답은 검찰이 쥐고 있다. 수사 결과로 보여줄 일이다. 조금은 무뎌도 적시에 신속한 수사가 되어야 한다. 기자가 나서 수사의 저의를 답하지 않길 바란다. 검찰 역시 떳떳하게 ‘저의는 범죄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홍성규 채널A 사회부 차장 hot@donga.com
#검찰#사정 수사#김수남 검찰총장#사법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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