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公기관 반발에 ‘空개혁’… 석탄공사 폐업 없던 일로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15일 03시 00분


코멘트

[변죽만 울린 공공기관 개혁]부채 1조6000억원 ‘돈먹는 하마’… 단계적 구조조정 어정쩡 타협

정부가 14일 발표한 ‘에너지·환경·교육 분야 기능 조정 방안’에는 정책 가짓수는 많았지만 공공기관을 획기적으로 개혁하는 핵심 대책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주무부처와 공공기관의 반대에 통폐합은 최소화됐고, 단순 업무 기능 조정이 중심을 이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권 내부에선 자화자찬만 가득하다. 집권 4년 차에 접어든 박근혜 대통령이 공공개혁 성과에 조바심을 느끼자 관료들이 ‘장밋빛 청사진’으로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린 것 아니냐는 비판마저 제기된다.

○ 석탄공사 폐업 ‘없던 일로’

이번 공공기관 기능 조정에서 ‘뜨거운 감자’는 대한석탄공사 폐업 여부였다. 석탄공사는 채광여건 악화에 따른 생산원가 상승으로 정부의 지속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자본이 잠식되고 영업적자가 누적돼 왔다. 지난해 말 석탄공사의 부채는 1조6000억 원, 당기순손실은 626억 원에 이르렀다. 정부가 지난해에만 금융부채 이자비용 등의 명목으로 875억 원을 지원했을 만큼 ‘돈 먹는 하마’였다.

기획재정부는 당초 석탄공사 폐업을 강하게 밀어붙였다. 당장 폐업이 어렵다면 최소한 폐업 일정이라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는 “탄광의 감산과 폐광은 탄광 노사 간 합의에 따른 자율 신청 없이는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특히 폐업 시 석탄공사 부채 처리를 위한 재원 조달 방안이 쉽지 않다는 게 문제가 됐다. 또 부처 논의 내용이 중간에 언론에 알려지자 석탄공사 노조와 폐광지역 지자체가 강력히 반발한 것도 발목을 잡았다. 해당 지역 국회의원이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을 만나 폐업 철회를 요청하는 등 압력이 거셌다.

이견 대립과 반발이 계속되자 정부는 한발 물러나 ‘단계적 구조조정’이란 어정쩡한 타협안을 내놓았다. 정원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고 신규 채용을 중단하지만 폐업 시기는 명시하지 않았다. 폐업이 사실상 무산됨에 따라 석탄공사 노조는 이날 강원 원주시 본사에서 긴급 대의원 대회를 열고 전체 대의원 25명 만장일치 찬성으로 정부안을 수용하기로 결정했다. 정부 관계자는 “지역 주민과 주무부처의 격렬한 반대로 인해 더이상 진전이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 해외자원개발 중장기 전략 제시 못해

또 다른 쟁점 사안이었던 해외자원개발 기능 조정과 관련해선 구체적인 개편 방안을 대통령에게 보고조차 하지 못했다. 한국석유공사와 한국가스공사의 비(非)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해체 위기에 놓였던 한국광물자원공사의 해외자원개발 기능을 단계적으로 축소한다는 총론 수준의 가이드라인만 정했다.

정부가 에너지 공기업의 조직 개편과 해외자산 매각에 매몰된 나머지 정작 중장기적인 해외자원개발 전략은 ‘실종 상태’다.

일부 핵심 대책은 사실상 현 정부에서 실현되기가 어려운 것들이다. 정부는 8개 에너지 공기업의 지분 20∼30% 상장을 내년 상반기부터 순차적으로 추진할 계획이지만 내년에 대선이 예정돼 있는 만큼 상장이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야당과 일부 시민단체가 공기업 상장을 민영화의 시작으로 보며 반대하고 있어서다. 발전 자회사들의 수익이 좋은 상황에서 상장을 추진할 명분도 실리도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1년 남동발전 상장을 추진했다가 실패한 사례도 있다.

○ 자화자찬만 가득

“개혁의 길 끝나지 않았다”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16 공공기관장 
워크숍’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우리가 가야 할 개혁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공공개혁은 민간부문의 
변화를 유도하는 개혁의 출발점으로 그 책임이 막중하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개혁의 길 끝나지 않았다”했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2016 공공기관장 워크숍’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우리가 가야 할 개혁의 길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공공개혁은 민간부문의 변화를 유도하는 개혁의 출발점으로 그 책임이 막중하다”고 강조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통폐합 대상 5개 공공기관 중 멸종위기종복원센터(2017년 설립 예정)와 호남권생물자원관(2018년 설립 예정)은 아직 만들어지지도 않은 기관이다. 실질적으로 통폐합이 이뤄지는 기관은 3개에 불과하다. 주무부처와 공공기관의 강력한 반대로 통폐합에 진전이 없자 정부는 29개 기관의 업무 기능 조정으로 정책 가짓수를 채웠다.

그중에는 한국수력원자력의 발전용 댐과 한국수자원공사의 다목적댐으로 이원화돼 있는 댐 관리 업무를 수자원공사로 일원화하는 중요한 기능 조정도 있지만, 대부분은 단순 업무 조정이다. 예컨대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의 경영지원 인력을 축소하거나 상하수도협회와 환경공단으로 이원화돼 있는 상하수도 통계작성 기능을 한국환경공단으로 일원화하는 정책은 국민 체감도가 낮은 것들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청와대와 정부 내부에선 자화자찬 일색이다. 안종범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은 임금피크제와 성과연봉제 도입을 들며 “공공개혁이 역대 정부도 해내지 못한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다.

이인실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정권마다 공공기관 개혁이 ‘경영쇄신 방안’ ‘선진화 방안’ 등으로 이름만 달리해 되풀이돼 왔지만 뾰족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공공기관 개혁은 정부가 정부를 개혁하는 만큼 더 철저한 각오와 추진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박민우 기자/ 춘천=이인모 기자
#공공기관 개혁#구조조정#석탄공사#부처#해외자원개발#2016 공공기 관장 워크숍#박근혜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