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자살 부른 국정원 해킹 논란, 국회 정보위가 진상규명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2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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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보안업체로부터 해킹 프로그램을 구입한 총괄 책임자로 알려진 국가정보원 직원 임모 씨가 18일 목숨을 끊었다. 그는 “내국인에 대한, 선거에 대한 사찰은 전혀 없었다”고 해킹 의혹을 부인하면서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해 대(對)테러, 대북(對北) 공작 활동에 오해를 일으킨 자료를 삭제했다”는 유서를 남겼다. 이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의 안철수 국민정보지키기위원장은 “국정원의 사찰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관련 직원의 돌연한 죽음은 또 다른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며 ‘꼬리 자르기 자살’의 수사를 촉구했다.

정보보안 전문가인 임 씨가 관련 자료를 삭제한 것은 중요한 증거를 은폐하려 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다. 내국인에 대한, 선거 관련 해킹이 없었다면 임 씨가 적극적으로 이를 설명하고 자료를 통해 입증하는 것이 옳았다. 국정원 직원들이 어제 보도자료에서 밝혔듯이 ‘국정원의 민간 사찰을 기정사실화한 정치적 논란’이 임 씨를 죽음으로 몰아간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국정원 직원의 불행한 자살이 국정원 해킹 논란의 본질을 흐려선 안 될 것이다. 이번 사안의 핵심은 국정원이 해킹 프로그램으로 민간인의 스마트폰까지 들여다봤느냐다. 35개국 97개 수사·정보기관이 같은 프로그램을 구입했지만 외교 안보에 미칠 파장을 무시한 채 사용 기록까지 파헤치겠다는 정치권은 대한민국 말고는 없다. 미국 의회도 공공의 안전을 위해 군과 수사·정보기관이 테러범과 범법자 조사에 필요한 첨단 도구를 갖추는 것이 필수라는 연방수사국(FBI)의 입장에 공감하는 형편이다.

국정원은 과거 휴대전화 도·감청이 일부 사실로 드러났던 원죄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불법 해킹 논란의 진상을 신속하고 철저하게 규명하는 데 협조해야 한다. 진상 조사는 국정원에 대한 상시 감시 기능을 맡고 있고 보안유지 의무가 부여돼 있는 국회 정보위원회가 나설 책임이 있다. 새정치연합이 이미 합의된 정보위의 국정원 현장조사 대신 해킹 프로그램의 사용 기록을 원본 로그파일로 요구하는 것은 국정원의 정보 역량을 해치고 정쟁만 키울까 우려스럽다.

안철수 의원은 변죽만 울릴 게 아니라 상임위원 변경 절차를 통해 정보위원 자격으로 국정원 현장조사에 참여하기 바란다. 그것이 전문가로서 올바른 태도다. 국정원도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삭제된 자료의 복구가 가능하다고 밝힌 만큼 조속히 자료를 복원해야 할 것이다. 국가정보기관이 국민 사생활까지 들여다본 것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엄정한 책임 추궁이 따라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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