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당 조직지도부 빼곤 北에 ‘숙청 안전지대’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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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김정은 공포통치]김정은 시대, 숙청의 규칙은

현영철 북한 인민무력부장의 숙청으로 김정은의 ‘공포 통치’가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국정원은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에서 처형된 주요 간부가 70명이라고 발표했다. 지난 3년 반 동안 행해진 김정은 숙청사를 돌아보면 여기에도 교묘한 규칙이 작동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번 현영철 처형이 사실이라면 김정은식 통치방식을 한층 선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김정은의 숙청사’를 들여다보면 현 체제에서 안전한 그룹과 미래에 위태로운 그룹에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예상이 가능하다.

○ 김정은은 왜 軍 인사들을 숙청하나

북한 독재 체제를 지탱하는 3대 핵심 축은 노동당, 군, 국가안전보위부(비밀경찰)이다. 김일성 시대부터 시작해 김정은 시대까지 달라지지 않고 있는 굳건한 시스템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적잖은 변화가 감지된다. 세 축 간의 역학관계가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대에서 약간씩 달라졌기 때문이다.

김일성 시대에는 노동당 군 보위부 순으로 권력이 배분됐으나 김정일 시대로 접어들면서 군이 정점에 서게 된다. 김정일이 1990년대 중반 이후 경제 파탄으로 민심이 흔들리자 “권력은 총에서 나온다”며 ‘선군정치’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당시 군은 북한에서 가장 우대받는 조직이 되었고 다음으로 국가안전보위부, 노동당 순이었다.

김정은 시대에는 다시 노동당이 약진했다. 노동당 내 인사권을 틀어 쥔 조직지도부가 김정은이 후계자이던 시절부터 꾸준히 그에게 충성을 바쳐 신임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노동당 내 권력구조도 달라졌다. 김정일 시대에는 장성택이 장악했던 행정부가 중심이었지만 김정은 시대에는 조직지도부가 권력의 핵심이 됐다. 주지하다시피 장성택은 막대한 세력과 재력을 움켜쥐고 있다가 김정은 장기 집권에 위험한 인물로 낙인찍혀 2013년 12월 비참하게 처형됐다.

김정은 시대에 위상이 가장 많이 변한 것은 군부였다. 지난 3년 반 동안 처형된 사람들도 주로 군부 인사가 많다. 그렇다고 김정은 체제에서 군의 중요성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역설적으로 군이 그만큼 위험하기 때문에 숙청의 칼날을 받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어떻든 지금 북한에서 군 인사들이 표적이 되는 이유는 김정은이 준비된 지도자가 아닌 상태에서 통수권자가 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권력 기반을 다져온 김일성과 김정일 시대에는 한 번 인민무력부장이 되면 10년 넘게 자리를 지키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자신들이 가장 믿는 사람을 군부 수뇌로 앉혀 ‘총구의 배반’을 막았다.

그러나 김정은에게는 믿을 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황병서 최룡해 같은 인물을 등용해 총정치국장을 맡겨 군부를 장악하려 하지만 민간 출신인 이들은 군 조직 장악에 한계가 있다. 결국 김정은의 군부 통치 전략은 “믿는 사람이 나타날 때까지 어떤 한 사람이나 집단이 세력화될 시간을 주지 않으며, 숙청 같은 공포심을 조장해 반역 움직임을 차단한다”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이 최근 군부 인물에 대한 숙청 및 계급 강등과 복권을 수시로 반복하는 ‘왕별 놀이’가 계속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안전한 그룹과 위태로운 그룹

이 같은 김정은 체제의 통치 방식을 알면 향후 숙청에서 가장 안전한 그룹과 위태로운 그룹도 예상할 수 있다.

가장 안전한 그룹은 황병서를 중심으로 한 노동당 조직지도부 그룹이다. 조직지도부는 수십 년간 한솥밥을 먹으며 끈끈하게 의리로 다져온 북한 최고의 엘리트 집단이다. 이 그룹에선 아직 숙청된 인물이 한 명도 없다.

다음으로 비교적 안전한 그룹은 최룡해 최태복 등 오랜 가신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수십 년 동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들은 북한 내 인지도는 상당히 높지만 김정은을 위협할 만한 세력 기반을 갖고 있지 않다.

국가안전보위부와 인민보안성(치안을 맡는 일반 경찰)은 숙청과 사회 기강 유지를 위해 매우 필요한 조직이다. 더구나 군부가 흔들리는 와중에 국가안전보위부까지 등을 돌리면 체제는 한층 위험해진다. 현재 김원홍 보위부장은 계속 숙청 예상 인물로 지목되고 있지만 김정은이 군부를 틀어쥘 때까지는 필요한 인물이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군부는 김정은이 핵심 심복을 찾았다고 판단될 때까지 계속 숙청의 칼날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 상황이라면 전쟁이 날 경우 김정은을 위해 목숨 걸 군인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김정은에게 필요한 군은 ‘체제를 향해 총구를 쏘지 않을 군’이지 전쟁에서 이길 군이 아니다. 그러나 국지도발에서는 죽기 살기로 싸울 가능성이 높다. 패할 경우 숙청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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