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의 정치해부학]문재인의 끝, 천정배의 시작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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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논설위원
박성원 논설위원
“노무현 상임고문이 다음 대통령이 돼야 한다. 왜냐하면 개혁의 원칙을 고집스럽게 지켜 왔고, 지역주의에 타협하지 않고 넘어서려 했으며….”

2002년 7월 부산에서 열린 한 초청 강연에서 천정배 당시 새천년민주당 의원이 노무현 후보 지지를 공개적으로 선언하며 한 말이다. 그해 3월 민주당 국민경선을 시작할 때만 해도 그는 노 후보 캠프에 합류한 유일한 현역 의원이었다. 노무현 정권 탄생 뒤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법무부 장관까지 지냈지만 2007년 탈당과 함께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친노와 사실상 결별했다.

새정연에 DJ의 칼 겨눈 千

지난해 7·30 재·보선 때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19대 총선 낙선으로 전 의원이 된 그의 광주 광산을 출마를 경선 기회까지 박탈하며 막은 데는 ‘호남 신당의 화근’을 키우지 않겠다는 계파 간 암묵적 담합이 작용했다.

그 당을 탈당한 천 의원이 4·29 광주 서을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당선됐다. 그는 어제 “내년 총선 때는 호남 (선거구) 30군데에서 새정치연합과 경쟁할 수 있는 ‘뉴 DJ(김대중 전 대통령)’들을 모아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1995년 DJ당으로 정계에 입문했지만 원조 친노 격이었던 천 의원이다. 그런 그가 ‘친노 새정치연합’을 버리고 나가더니 DJ 노선을 들고 친정을 향해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DJ는 이민우 총재에게 맡겨 둔 신민당이나 이기택 총재에게 맡겨 둔 민주당으로는 길이 안 보인다 싶으면 소속 의원 다수를 빼내 신당을 창당할 수 있을 만큼 야권에서 절대적 영향력이 있었다. 천 의원은 그런 존재는 아니다. 그럼에도 야권 내부에선 그가 광주 한복판에 깃발을 꽂은 데 대해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사실 문재인 대표가 2월 취임 이후 DJ 시절의 중도개혁주의와는 거리가 있는 진보·좌파 성향의 강경 노선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안 했던 것은 아니다. ‘경제 정당, 안보 정당’을 내세우며 취임 50일을 맞은 기자간담회에선 “마늘과 쑥만 먹고 지냈다”며 변화 노력을 자평했다. 하지만 쑥만 먹고 마늘은 빼먹었기 때문일까. 정부가 미일 신(新)안보동맹 같은 국제정세의 급변 속에 외톨이 외교에 빠졌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에서 번번이 적기를 놓쳐도 문 대표는 제대로 된 비판과 대안 제시를 못 했다.

이번 재·보선에선 김한길 박지원 안철수 박영선 의원 같은 대표급들을 동반 유세에 세우지도 않았다. 내년 총선의 공천권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수군거림도 나왔다. 지원 유세에서도 정작 후보보다 문 대표가 앞에 서는 바람에 ‘유권자들은 후보 얼굴도 모른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국회의원 재·보선이 ‘문재인의 대선판’이 돼 버렸다는 비판도 없지 않다. 기염을 토하며 ‘이기는 정당’을 만들겠다더니 ‘이길 수 없는 선거판’을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이길 수 없는 정당 만든 文

문 대표는 어제 기자회견에서 “절체절명의 각오로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을 뿐 사퇴의 ‘사’ 자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는 2012년 대선 패배 직후 낸 책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좌절과 실패 속에서도 역사는 발전한다는 위로와 믿음’을 언급한 바 있다. 문 대표가 되풀이되는 실패에서 배우는 것도 없는 데다 책임감마저 없다면, 야당 지지자들은 친정에 선전포고를 한 천 의원을 바라볼지도 모른다.

박성원 논설위원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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