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일째 ‘시한부 총리’… 20일째 국정원장 공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6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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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공백 장기화]
朴정부 人事, 고비마다 타이밍 놓쳐 국정공백

6·4지방선거가 끝난 이후 모든 관심은 국무총리 인선에 쏠려 있었다. 민심의 경고장을 받아든 박근혜 정부가 신임 국무총리를 통해 변화와 쇄신의 의지를 보여줄 거라는 기대가 컸다.

그러나 선거 후 첫 인선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이었다. 청와대 내에서조차 총리 인선도 아니고 청와대 전면 개편과 같은 큰 그림이 아닌 홍보수석 원포인트 인사는 악수(惡手)라는 비판이 나왔다. 정작 해야 할 인사는 손도 못 댄 채 변죽만 울렸다는 이유에서다.

국무총리 공백 사태는 장기화되고 있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정홍원 국무총리가 사의를 표명해 시한부 총리가 된 날 이후로 45일째다. 안대희 총리 후보자 낙마 이후 후임 총리를 8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후보자들이 검증의 문턱에 걸리면서 지난 주말 다시 추천을 받았다고 한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이어 여차하면 추가 내각 인선에도 사표를 낸 정 총리가 제청권을 행사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박근혜 정부 인사가 전략도, 시스템도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청와대가 인사 시기를 놓쳐 국정 파행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 총리의 사의 표명에 이어 5월 22일 국가정보원장 사표도 수리하면서 당정청 개편은 기정사실화됐다. 당정청을 아우르는 전방위 인적 쇄신을 놓고 관가는 사실상 올스톱 상태다. 여권 내에서는 “인사 타이밍을 놓치면 후유증이 크다”는 한숨이 터져 나온다. 세월호 참사 이후 창조경제, 경제혁신 3개년 계획, 규제개혁, 비정상의 정상화 등 박근혜 정부의 핵심 과제들이 힘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체포도 요원하고 경제상황도 좋지 않은데 이 정부가 인사 문제에 파묻히면서 국민들의 불안감도 커지고 있다.

한창 일해야 할 집권 2년 차에 인사에 발목 잡히는 것은 국가로서도 큰 손실이다. 결국 인사가 만사다. 2년 차를 맞은 박근혜 정부가 순항하려면 적절한 시점에 후임 인선을 마무리해 장고 끝에 악수가 나오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 첫 내각 출범에만 52일… 장고끝 惡手 되풀이 ▼

돌이켜 보면 박근혜 정부는 출범 이후 지금까지 끊임없이 인사 문제로 애를 먹었다. 인사 요인이 발생했는데도 실제 적임자를 발탁해 임명하는 데까지 너무 많은 시간이 걸렸다.

지난해 2월 25일 정부 출범 이후 국방부 장관, 공정거래위원장,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들이 잇달아 낙마하면서 1기 내각이 완성되는 데 거의 두 달 가까운 시간(52일)이 걸렸다. 지난해 양건 감사원장이 사퇴하고 신임 황찬현 원장이 임명되기까지 무려 98일 동안 감사원장 공백 사태를 겪기도 했다.

○ 늘 한발 늦은 박근혜 인사

박근혜 정부의 인사 타이밍은 늘 늦었다. 임명 때부터 자질 부족 논란이 있었던 윤진숙 해양수산부 장관의 경우 올해 2월 잇따른 실언에도 꿈쩍 않다가 “야당의 해임건의안 제출을 거절하기 힘들 정도로 여론이 좋지 않다”는 새누리당 지도부의 건의를 받고서야 경질했다. 박 대통령이 선제적으로 인사 개편을 한 것은 지난해 8월 대통령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개편이 사실상 유일하다.

인물과 직책이 ‘미스 매치’된 사례도 많았다. 국회와 소통 창구가 되어야 할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의 경우 63일간 공석이다가 지난해 8월 직업 외교관 출신인 박준우 수석이 임명됐다. “나는 여의도에서 밥 먹는 사람이 아니다”라며 청와대가 정치와 거리를 두는 새로운 당청 관계를 수립하겠다던 박 수석 임명 이후 청와대 불통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 ‘준비된 대통령’의 역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전 인사에 대한 기대가 컸다. 이명박 정부 내내 유력한 차기주자였기 때문에 인재 풀을 넓히기에 유리한 환경이었다. 게다가 보수정권이 이어지면서 과거 정부에서 국정 경험을 가진 장차관급 인사 후보도 많았다. 대선 기간에 야권 후보 간의 단일화 움직임에 맞서 국무총리와 주요 장관 후보자인 ‘섀도 캐비닛’(예비내각)을 발표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할 정도였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스스로 인재 풀을 좁혔다. 만기친람형 리더십에 기인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박 대통령은 청와대나 내각에 본인과 함께 대선을 치렀던 핵심 인사조차 거의 배제한 채 관료 출신들을 대거 기용했다. 본인이 대선 공약과 국정 과제를 가장 잘 알고 있으니 내각과 청와대는 본인의 뜻을 잘 이행하면 된다고 본 것이다.

결국 현 정부에서는 대통령만 보인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대통령 이외에 청와대나 내각에 이 정부를 책임질 만한 세력도 형성되지 않았다. 코드 인사도 문제지만 정작 본인의 인사 풀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인사청문회 대상이 확대되면서 청문회 통과가 쉬운 관료 출신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현 정부는 정도가 심하다”고 말했다.

○ 국민의 눈높이 인사해야

박 대통령이 지나치게 보안을 중시하느라 다양한 의견을 청취하지 못해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부분의 언론과 여권 내부에서 반대하는데도 초대 청와대 대변인으로 윤창중 씨를 임명한 것이나 국가대개조의 적임자로 자신 있게 꺼낸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의 전관예우 전력을 제대로 거르지 못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국무총리 인선에 미적거리고 있고 총리 하마평에 오른 인사의 면면을 보면 박 대통령이 ‘이 정도면 지방선거에서 선방했으니 기존 스타일대로 해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대탕평 인사를 적재적소에 임명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부터 되돌아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총리#내각#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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