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아파트도 2층까지만 수돗물… 전기 하루 4시간 공급”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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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통일코리아 프로젝트 2년차/준비해야 하나 된다]
북한의 굶주린 주민들, 탈북자 60인의 증언
점점 더 심해지는 경제난

외부와 단절된 북한 사회지만 내부에서는 자본주의적 요소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다.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이 만난 탈북자들에게서 북한 사회의 변화를 짚어낼 수 있는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탈북자들은 북한 최고의 직업으로 러시아 벌목공, 중국 콩 농장 인부 등 해외 근로자들이 떠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줬다. 돈을 잘 번다는 이유로 과거 선망의 직업이던 의사나 교원을 능가하는 최고의 인기를 누린다는 것이다.

2012년 7월 탈북한 박금주 씨(42·여)는 “러시아나 중국에서 2년 정도 일하고 온 사람들은 동네 주민들이 모두 부러워할 정도로 잘살았다”고 말했다. 해외 근로자들은 월급 중 70% 정도를 정부에 빼앗긴다고 한다. 하지만 나머지 30% 정도만 해도 북한에선 큰돈이다. 러시아 벌목공들은 본국에 돌아와 TV 냉장고 옷장을 구입하고도 장사 밑천까지 남겼다. 북한의 일반 근로자들로서는 상상도 못하는 일이다.

이런 직업을 얻는 게 쉽지는 않다. 박 씨는 “벌목공이 되려면 당원이어야 하고 36세 이하라는 나이 제한도 있다. 자녀 모두를 외국으로 데려가지 못한다는 규제도 있다”고 말했다. 의사나 교원도 아직까지는 인기 있는 직업이지만 의사들도 장마당에 나와야 먹고살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한다.

2014년 3월 현재 북한 장마당에서 쌀 1kg은 북한 돈 4000원에 거래된다. 뇌물용으로 쓰는 일명 ‘고양이 담배’가 한 갑에 2000원이고 항생제인 페니실린 역시 2000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 탈북자들은 북한 장마당에는 중국쌀, 북한쌀 그리고 호남쌀이라 불리는 대한민국 쌀을 비롯해 없는 것이 없다고 전했다. 한국에서 수입된 화장품까지도 거래될 정도다. 물론 한국산 브랜드임을 표시하는 상표는 지운다.

북한의 교육도 말이 무상교육이지 모든 비용을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교과서 교복 학용품은 모두 자신이 챙겨야 한다. 의료비도 자기 부담이다. 일선 시도 병원에는 기본적인 항생제나 거즈조차 배급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병자들은 장마당에서 각종 약품을 구입해 병원으로 가져가곤 한다. 페니실린의 국정가격은 38원60전이지만 시장가격은 2000원. 시도 약품관리소장이 시장 상인에게 1500원에 팔아 착복하는 일이 다반사다. 따라서 탈북자들은 치료받기 위해 북한 장마당에서 항생제 붕대 마스크 반창고 주사기 등을 구입해야 한다.

평양의 고급 아파트를 제외한 대부분의 아파트 단지에는 재래식 공동 화장실이 있다. 아파트라고 해서 집집마다 화장실이 제대로 갖춰진 게 아니어서 아침이면 주민들이 공동 화장실 앞에 길게 줄을 서야 한다.

평양에서 10년을 거주한 재일교포 탈북자 김석규 씨(76)는 “평양의 간부 등 엘리트가 사는 집을 가도 대한민국 같은 중앙 가스난방 시스템을 갖춘 곳이 없다. 가스레인지로 밥을 짓는 일은 거의 없고 대부분 조그마한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짓는다”고 말했다.

전기도 공휴일, 명절에나 제대로 공급되기 때문에 평소 TV나 DVD를 보는 게 쉽지 않다. 일부는 뇌물을 주고 기업소에 공급되는 전기를 자택으로 연결하기도 한다. 평양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 씨는 “중앙당 간부들이 거주하는 평양의 중구역을 빼고는 시간제로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만 전기가 들어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평양 광복거리 등 고층 아파트가 보기에는 멋있지만 사실은 날림으로 지은 것이어서 2층까지만 물이 공급된다. 그 위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계단을 걸어 내려와 물을 길어야 한다”고 전했다. 그러다 보니 매일 샤워를 하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며 보름에 한 번 정도 목욕을 한다.

여성에 대한 외모 간섭도 심하다. 북송 교포의 손녀로 2006년 탈북한 뒤 일본에 살고 있는 20대 여성은 “북한에서는 여성들의 머리가 흑발이어야 하고 너무 짧아도 안 된다. 원래 갈색 머리인 나는 길거리에서 종종 주의를 받았다. 귀고리와 반지 때문에 시비를 걸어올 때도 있었다”고 전했다.

신분에 따른 이중 잣대도 적용된다. 북송 교포의 자녀로 2000년 초 탈북해 일본에 살고 있는 30대 남성 가네다(金田) 씨는 “경찰 고위 간부인 친구 아버지가 김정일로부터 미국산 담배와 고급 통조림을 선물 받은 것을 알고 충격에 빠졌다. 서민들에게는 미국을 적이라고 가르치고 미국 물건을 갖고 있으면 체포하면서도 고급 간부들은 미국산 제품을 쓰면서 윤택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고 말했다.

최근 북한 제13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100% 지지 결과를 두고 논란을 벌였던 것은 새로운 일도 아니었다. 도쿄(東京)에 거주하는 탈북자 가와사키 에이코(川崎榮子·71·여) 씨는 “북한의 선거가 가장 이상했다”고 회고했다. 1개 선거구에 후보자는 반드시 1명이었다. 투표율 100%에 득표율도 100%다. 투표소 모퉁이에는 감시원이 있어 반대에 해당하는 ‘×’를 쓴 주민을 현장에서 체포한다. 그러곤 곧바로 수용소로 보낸다. 그게 북한식 투표다.  
▼ 본보가 35명, 아사히가 25명 탈북자 4개월 심층면접 ▼
어떻게 조사했나


이번 조사는 탈북자와 일대일 심층면접 방식으로 진행됐다.

동아일보 취재진이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35명을, 아사히신문 취재진이 지난해 12월부터 올 3월까지 4개월간 25명을 각각 만났다. 취재에 응한 탈북자는 남자 25명, 여자 35명. 연령은 10, 20대 6명, 30, 40대 30명, 50대 이상 24명이었다.

설문 항목은 △식량 사정 △사상 통제 △시장 상황 등 전반적인 북한 생활을 묻는 항목을 비롯해 △현재 한국 또는 일본에서의 생활 만족도 △통일 이후 북한에 돌아가 살고 싶은지 등 24개였다. 특히 인권 침해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1인당 최소 4시간에서 8∼9시간이 걸리는 대장정이었다. 동아일보와 아사히신문은 2월 말 취재 내용을 교환해 취재한 설문의 분석 작업을 벌였다.
동아일보·아사히신문 공동취재팀

<동아일보> 배극인 박형준 도쿄특파원, 김영식 박희창 국제부, 백연상 사회부 기자

<아사히신문> 기하라 다미유키(鬼原民幸) 호리우치 교코(堀內京子·이상 특별보도부), 요시타케 유(吉武祐) 히가시오카 도루(東岡徹) 히라가 다쿠야(平賀拓哉) 마키노 요시히로(牧野愛博) 기타가와 마나부(北川學·이상 국제보도부), 다이나카 마사토(田井中雅人) 도쿄 사회부, 다케다 하지무(武田肇) 오사카 사회부 기자

▶ 아사히신문 한국어판에 실린 기사 바로가기
#탈북자#북한 경제#경제난#평양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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