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北, 위장 대화공세”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비방 중단 北제안 하루만에 거부… 통일부 “말 아닌 행동 보여야”

남북한 간 ‘2014년 샅바 싸움’이 가열되고 있다. 북한이 화해 제스처를 보이면 한국은 ‘진정성 있는 행동’을 요구하고, 한국이 남북 관계 개선 제의를 하면 북한은 ‘못 믿겠다’며 거부하는 양상이다. 박근혜 정부 2년차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시동 걸기가 만만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는 17일 북한의 이른바 ‘중대 제안’을 “사실을 왜곡하고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있어 유감”이라며 거부했다. 북한이 전날 오후 7시 50분경 갑자기 국방위원회 명의로 △30일부터 비방 중상 전면 중지 △한미 군사연습 등 군사적 적대행위 중지 △핵 재난을 막기 위한 현실적인 조치 등을 제안했지만 한국 정부의 공식 반응은 이처럼 싸늘했다. 정부의 반응은 16일 밤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 주재로 열린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 조율됐다. 곧바로 인도를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보고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과 미국 당국은 연합군사훈련을 예정대로 실시한다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통일부 김의도 대변인은 17일 북한의 제안을 하나하나 반박했다.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강경했고 비판의 강도도 셌다. 김 대변인은 “남북 간 비방 중상 중지 합의를 위반하면서 그동안 비방 중상을 계속해 온 것은 북한이다. 남북 간 신뢰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는 점을 명심하라”고 말했다. 또 “말로만 남북 관계를 개선하자면서 비방 중상을 계속하고, 비방 중상을 하지 말자고 해놓고 자기들이 비방 중상을 하는 것은 말과 행동이 따로 노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중대 제안이라고 해서 놀랐으나 찬찬히 봤더니 도저히 받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정부의 반응은 북한 제안을 ‘거부’했다기보다 ‘비판’한 것”이라고 말했다.  

“비방중상 계속해 온 北… 대화의 진정성 찾을 수 없어” ▼

“北, 수용할 수 없는 주장 내세우며… 남북관계 경색 책임 떠넘길 의도
비핵화-이산상봉 실질행동 취해야” 24일 ‘3通 분과회의’… 北태도 주목
백악관 “韓美훈련 계획 변경안해”

○ “북한 제안에 대한 거부 아니라 비판”


정부의 이런 태도는 북한의 중대 제안에 진정성이 전혀 없고 위장 대화 공세와 여론전을 통해 남남 갈등을 일으키려는 선전선동의 성격이 강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이 중대 제안에서 한국의 언론 매체까지 단속하려는 걸 보면 장성택 처형 이후 김정은 체제의 급변사태에 대한 언론의 관측조차도 못하게 만들려는 의도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 대북소식통은 “김정은이 이른바 ‘장성택 세력’ 제거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만큼 북한 내부가 안정될 때까지는 남북 관계 개선 제스처를 계속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가장 크게 문제 삼은 부분은 북한이 “유독 남조선(한국)의 현 집권자들이 유전으로 체질화된 대결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채 새해 벽두부터 상서롭지 못하게 놀아대고 있다”고 비난한 대목이다. 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이는 박근혜 대통령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싸잡아 저급하게 비난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 의지를 운운하면서 ‘핵 무력과 경제의 병진노선’을 고집하고 자신들의 핵 개발을 “민족의 자위적 선택이자 미국의 핵 위협 억제수단”이라고 주장한 점도 어불성설이라고 봤다. 짐짓 대화에 나서는 척하면서 한국 정부가 수용할 수 없는 주장을 제안에 포함시켜 남북 관계 경색의 책임을 한국 정부에 돌리려는 의도가 다분하다는 설명이다. 또 악화된 북-중 관계를 개선하려고 자신들이 남북 관계에 노력하고 있음을 중국에 선전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정부는 판단했다.

○ 북한이 보여야 할 ‘말 아닌 행동’은 무엇?

김 대변인은 북한이 대화의 진정성을 보이기 위해 취해야 할 행동으로 △비방 중상 중단 △과거 도발 행위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행동 △아무 조건 없는 이산가족 상봉 실현 등을 제시했다. ‘과거 도발 행위’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을 가리킨다.

국방부 관계자는 “북한이 서해 5도에서 상대를 자극하는 행위 중단을 먼저 실천하겠다고 주장한 만큼 서해 연평도 인근 등에서의 삐라(전단) 살포 중단과 북한 방송을 통한 대남 비방의 일시적 중단 등을 선언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한미 연합군사연습인 키 리졸브가 시작되기 전 ‘비방 중지→동계훈련의 일시적 중단 및 전방 배치 전투장비의 후방 이동→남북 군사회담 제안’의 3단계 평화 공세를 보일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해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 산하 3통(통신·통행·통관) 분과위원회 회의가 2개월 만인 24일 열릴 예정이어서 북한의 태도가 주목된다. 북한은 17일 오전 공동위원회를 통해 회의 일정을 제안했고 한국이 이를 받아들였다고 통일부 관계자가 전했다. 이 회의에서는 공사가 완료된 전자출입체계(RFID) 운영 방안, 인터넷 설치, 통관 검사 간소화 등 현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제이 카니 미국 백악관 대변인도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과의 군사적 관계나 훈련에서 전혀 변경할 것이 없다”고 말했다. 젠 사키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버리겠다고 약속한 2005년 9·19 공동성명을 준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한편 대니얼 러셀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14일 벨기에 브뤼셀 방문 중에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북한은 지금 ‘막다른 길’을 가고 있다”고 경고했다고 국무부가 밝혔다.

윤완준 zeitung@donga.com·동정민 기자
워싱턴=정미경 특파원
#북한#비방중단#통일부#남북관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