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꿈꾸는 정치인]<14>아픔만큼 성숙해진 나경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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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이 깊으면 배움도 깊다… ‘함께하는 정치’ 해답 찾는 중

막이 내린 무대를 휘감는 건 짙은 회한이다. 조명이 사라지면 배우는 초라해진 자신을 발견한다. 여당의 서울시장 후보까지 됐던 나경원 새누리당 전 의원(50)도 요즘 복잡한 심경으로 자신이 섰던 무대를 바라보고 있다. 화려한 조명도 이젠 그의 몫이 아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는 정치인 나경원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다.

나경원은 줄곧 주목받는 정치인이었다. 2004년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된 뒤 당 최고위원과 이명박 대선후보 대변인 등을 맡으며 미디어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수려한 외모 덕도 있었다. 얼굴을 보자고 유세 현장에 유권자가 몰려들 정도로 나경원은 인기 정치인이었다. 소수였지만 ‘대망(大望)’을 거론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인기만큼 ‘안티’도 늘어갔다. 첨예한 이슈를 놓고 전면에 나서 싸우다 보니 진보의 비판이 그에게 집중됐다. 귀족처럼 비치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있었다. 10년간 보수의 전사(戰士)로 싸우며 쌓은 공과 인기는 안팎의 안티와 함께 조금씩 허물어졌다. 몸을 던져 지켜온 당도 그를 차갑게 대하고 있다.

1년 9개월간 정치를 떠나 있으면서 나경원은 자신을 돌아보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래서 얻은 것이 ‘내려놓음에 대한 성찰’이다. 스페셜올림픽 성공은 그에게 삶의 본질에 대해 천착하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그와 친분이 있는 정치인들은 “무대에서 내려와 있는 동안 인간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한 뼘 이상 자란 것 같다”고 평가했다.

나경원은 여전히 꿈을 꾸고 있을까. 그게 궁금해 인터뷰를 청했지만 고사했다. “정치를 계속하는 것이 맞는 건지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상황에서 정치인 자격으로 인터뷰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라는 거였다. ‘그냥 편하게 지난 이야기나 하자’는 말로 설득해 30일 전화로 간단히 대화를 나눴다.

―‘정치인 나경원’의 문제는 뭐였나.

“정치는 일과 관계가 어우러져야 성공할 수 있다. 나는 너무 일 중심으로 살아왔다.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유불리를 따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혼자는 잘했지만 같이 잘하는 데는 서툴렀다. ‘내가 잘할 수 있다’는 생각보다는 ‘남도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 필요했던 게 아닌가 싶다. 샤이(shy)한 성격 탓에 교류가 적었던 부분도 있다. 함께 어울리는 것도 정치의 중요한 과정이다. 그래야 남을 이해하고 보듬을 수 있다.”

―안티가 많다.

“내 잘못이 크다. 좀 더 신중함이 필요했다고 생각한다. 큰 이슈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반대세력의 표적이 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불리한 사안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 사람이라도 더 설득하기 위해 나섰는데 그게 역풍이 돼 돌아왔다. 나름대로 상대의 의견을 들어주려고 했지만 똑 부러지게 이기려고 하다 보니 정서와 유리된 부분도 있었다. 너무 이기려고 했던 게 후회된다.”

새누리당에서 나경원의 입지는 예전에 비해 좁아져 있다. 당의 주류인 친박(친박근혜)과도 원만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여권에서 나경원만큼 대중성 있는 정치인도 많지 않다. 당내에선 ‘박근혜 대통령 빼고 지원 유세를 요청하고 싶은 1순위’로 거론되기도 했다. 어려웠던 지난 보궐선거에 ‘차출’돼 당을 위해 뛰었던 걸 평가해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그래서 그는 여전히 내년 서울시장 선거의 잠재적 후보군으로 분류된다. 국회의원 재·보선 때 어려운 지역에 나경원을 출마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올 가능성이 있다.

―다시 정치를 할 건가.

“내가 정치를 통해 사회에 선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고민해 보고 있다. 그동안 정치인으로서 맡은 일을 성실하게 해왔다고 생각한다. 선거 때마다 전국을 다니며 힘을 보탰다. 공인으로서 거의 모든 시간을 공적인 일에 썼던 것 같다. 하지만 열심히 한 게 꼭 잘한 건 아닌 것 같다. 잘하는 일에 대해 좀 더 고민이 필요했던 것 같다. 지금은 나 자신을 성찰하고 있다.”

―구체적 일정에 대해 생각해 봤나.

“근본적인 물음에 대해 답을 찾은 뒤 천천히 생각해 보려고 한다. 나 자신을 위한 권력의지는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함께하는 정치’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게 우선이다. 당장 선출직에 나서는 것보다는 내실 있게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정치했던 걸 후회하지 않았나.

“선거 패배 후 그런 질문을 여러 번 받았다. 힘들고 가슴 아플 때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는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정치인 출신이 아니었다면 스페셜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어려웠을 거다. 내 모든 걸 스페셜올림픽에 쏟아부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스페셜올림픽에서 뭘 얻었나.

“‘함께’가 아니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거다. 슬로건이었던 ‘투게더 위 캔(Together We Can)’은 나에게 많은 메시지를 준다. 이 슬로건이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됐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경쟁적이다. 곳곳에 갈등이 있다. 협력을 지향하는 쪽으로 사회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그래야 정치도 바뀐다. 여든 야든 이기려고만 하니까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 아니냐. ‘투게더 위 캔’이 문화운동으로 자리 잡는다면 대한민국이 더 성숙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나경원은 한국스페셜올림픽위원장과 장애인체육회 이사를 겸임하며 장애인의 인권을 위해 일하고 있다. 평창스페셜올림픽 후속으로 8월 6일부터 열리는 뮤직앤아트 페스티벌과 9월 유엔이 주관하는 스페셜올림픽 사진전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다. 진정성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지만 주변에선 “장애인을 위한 일이라면 혼을 던져 일한다”고 평가한다.

그는 요즘 시간을 쪼개 쓰면서도 남는 시간엔 서예를 배운다. 자신을 내려놓는 데 서예만 한 게 없다는 생각에서다. 그와 함께 서예를 배우는 신지호 전 의원은 “나 전 의원이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통해 많이 성숙해졌다”며 “국민에게 어필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가다듬는다면 머지않아 정치라는 무대에 다시 설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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