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 국회 뒤에는 ‘초강력’ 선진화법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6일 03시 00분


코멘트

■ 국회법 개정 11개월째

국회 다수당의 법안 단독 처리를 막기 위해 지난해 5월 탄생한 개정 국회법(일명 ‘국회선진화법’)이 입법 취지에 맞지 않게 법안 처리의 발목을 잡는 ‘국회후진화(後進化)법’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2월 임시국회가 종료된 5일까지도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불발되면서 여당인 새누리당은 “민주통합당이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해 ‘식물국회’에 이어 ‘식물정부’를 만들고 있다”며 민주당을 비난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르면 안건조정위는 이견 조정이 필요한 안건에 대해 상임위 재적 의원 3분의 1 이상의 요청이 있으면 구성되고 최대 90일간 활동할 수 있다. 민주당 소속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의원들은 지난달 정부조직법 관련 안건조정위를 발동시켰고, 이 때문에 여야 합의 없이는 국회 본회의에 이 법안을 직권상정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 정부의 장기 공백 상태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정부조직법 협상에서 ‘해볼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버틸 수 있는 것도 이 법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은 18대 국회 마지막 날이던 지난해 5월 2일 다수당의 일방적인 국회 운영과 국회 폭력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국회선진화법은 직권상정 요건을 △천재지변 △전시(戰時) 등 국가비상사태 △교섭단체 대표 합의 등 세 가지로 엄격하게 제한했다. 여야가 극심하게 대립하고 있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입해 보면 결론적으로 여야 협상 외에는 뾰족한 방법이 없다. 신속히 처리하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 역시 난망하다. 재적 의원 5분의 3(180명)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여당 의원은 152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5일 확대원내대책회의에서 “국회선진화법을 악용하는 극단주의적 행동을 국회가 방치하다 보니 국회 전체가 도매금으로 신뢰 하락이라는 불이익을 얻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런 식으로 자당의 이익을 위해 국민을 우습게 보는 행위를 되풀이하면 선진화법이든 뭐든 개정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국회선진화법을 폐기하거나 손질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국회 혁신’이란 거창한 명분을 내세워 탄생한 지 1년도 안 된 법을 손대는 것은 명분이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국회선진화법은 박근혜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고 했던 법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선진화법은 국회의 ‘동료 의원 구하기’에 악용되고 있다는 비판도 낳고 있다. 4일 국회 윤리특별위원회는 민주당 이종걸, 배재정 의원 등에 대한 징계안을 처리할 예정이었으나 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여야의 견해차가 크다”며 안건조정요구서를 제출했다. ‘90일’이라는,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번 셈이다.

국회선진화법이 처음부터 우리의 정치 현실을 무시한 채 미국의 제도를 어설프게 흉내 낸 법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 원내 관계자는 “지난해 대선을 앞둔 여야가 다수결이라는 의회민주주의 원칙보다는 몸싸움 방지라는 표피적인 정치개혁 경쟁에 나서 법안 처리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국회무력화법’을 만들어 냈다”고 탄식했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무기력#초강력#국회선진화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