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에 도사린 5개의 함정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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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특정후보 지지자 끼워넣을 수도
[2] 공신력있는 조사기관 참여 꺼려
[3] 0.01%의 선택이 선거판도 좌우
[4] 특정 연령-지역 의견 왜곡 위험
[5] 패자측에선 흔쾌히 승복 어려워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방식에 여론조사가 포함될 것이 유력한 상황에서 전문가들은 여론조사가 태생적으로 갖고 있는 신뢰도(credibility)의 한계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의도적인 조작이나 실수로 발생하는 통제 불가능한 ‘비(非)표본오차’를 해결하지 않으면 단일화 뒤에도 공정성 논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함정 ①: 조사샘플 조작 가능성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조사기관이 표본을 추출하는 과정에서 특정 후보 지지자들을 샘플에 몰래 포함시키는 게 기술적으로는 어렵지 않다고 말한다. 박성현 서울대 명예교수(통계학)는 “표본 설계를 고의로 왜곡하는 게 가능하다”고 했다.

예를 들어 1000명을 조사하면서 특정 후보 지지자의 샘플을 수십 개만 집어넣어도 지지율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2002년 단일화 때 노무현 후보에게 패한 정몽준 후보 측에서도 이런 의혹이 제기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문가들은 조사 면접원이 실수 또는 의도적으로 답을 바꿀 수 있고 데이터 입력 과정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함정 ②: 공신력 있는 기관 확보 난제

2002년 노무현, 정몽준 후보 측은 단일화 방식 협상 때 매출액 10위권의 공신력 있는 여론조사 기관을 선정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유력 조사기관들은 정치적 논란에 휘말리기 싫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정 후보 측의 여론조사 전략을 담당했던 김행 위키트리 부회장은 13일 “한 유력 조사기관의 회장 집까지 찾아가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다”고 회상했다. 일각에선 공신력이 떨어지는 일부 조사기관은 매수가 가능하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돈다. 실제로 큰 선거 뒤에는 일부 여론조사기관의 불공정성 문제가 도마에 오른 사례도 있다.

함정 ③: 0.01%로 선거 민의 반영?

통상적으로 여론조사는 1000명 또는 1500명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2002년 단일화 때 두 여론조사기관이 조사한 대상은 모두 4000명이었다. 현재 총 유권자가 4000만 명이 넘는 점을 감안하면 0.01%에 불과한 셈이다. ‘여론조사 전화를 받을 확률은 로또 당첨 확률과 비슷하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여론조사가 단일후보를 결정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면 후보를 선택한 응답이 저장된다는 점에서 비밀투표 원칙에 훼손된다는 지적도 있다. 연령과 지역별 응답자 비율을 인구 비율에 맞추기 위해 묻는 질문에서 응답자가 나이와 지역을 속일 수도 있다.

함정 ④: 특정 표본 과대포장

연령과 지역별 응답자 비율이 실제 인구통계 비율에 미치지 못할 경우 맞출 때까지 계속하는 게 아니라 보정 프로그램(weighting program)을 이용해 가중치를 주는 방식으로 비율을 맞추기도 한다. 이 경우 해당 연령대 또는 지역의 경우 응답한 사람들만의 의견이 과대 포장돼 결과를 왜곡할 수 있다.

함정 ⑤: 불신의 악순환

신뢰도의 함정은 심각한 불신을 낳는다. 2002년 단일화에 패한 뒤 정몽준 후보 캠프에선 당시 민주당 출신 인사들을 상대로 ‘트로이의 목마 아니냐’며 이른바 청문회가 열렸다고 한다. 몸은 정 캠프에 있으면서 실제로는 노무현 후보에게 유리하도록 협상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었다. 한 관계자는 “불신으로 인해 피아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박성현 교수는 “공정성을 보완하려면 제3의 공신력 있는 기관이 표본 설계부터 모든 과정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단일화#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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