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 선대위, 소수자 배려 - 과거사 껴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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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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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공동선대위원장, 소아마비 극복… 박정희 반대 육참총장 석방
김중태 대통합부위원장, 6·3사태 주도… 1차 인혁당사건 연루돼 옥고
김현장 대통합위원, 부산 美문화원 방화사건으로 사형선고 받아

새누리당 박근혜 대선후보 선거대책위원회가 진통 끝에 11일 출범했다. 장애인(소아마비)으로 법조계 원로인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과 ‘글로벌 여성 리더’인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이 영입돼 정몽준 전 당 대표, 황우여 대표와 4인 공동위원장 체제로 선대위를 이끈다.

박 후보는 이날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자신이 공약위원회와 100%대한민국대통합위원회 위원장을 맡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선대위 인선 결과를 직접 발표했다. 박 후보는 “김무성 전 원내대표가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서 선거 전반의 실무를 지휘할 것”이라며 힘을 실어줬다.

이날 인선에서는 그동안 박 후보가 직접 영입에 공을 들였던 외부 인사의 면면이 드러났다. 특히 대법관 출신인 김 위원장의 인생 역정은 우리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격려라는 상징성도 가진다.

김 위원장은 아버지가 6·25전쟁 당시 납북돼 생사조차 모르는 상황에서 3세 때 소아마비를 앓아 어머니와 친구들에게 업혀서 학교를 다니며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다. 대학 3학년 때 고시 9회에 최연소로 수석 합격해 3년 뒤인 22세에 판사가 됐다.

박 후보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5·16군사정변 후 대통령선거에 출마하려 하자 군 선배인 송요찬 전 육군참모총장이 이에 반대하는 글을 동아일보에 기고했다가 구속됐다. 당시 소장 판사였던 김 위원장은 구속적부심에서 송 전 총장을 석방하는 소신을 보이기도 했다.

박 후보는 1960년대 학생운동권의 ‘간판스타’로 박정희 정권에 저항했던 재야운동가 김중태 씨를 대통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영입했다. 김 씨는 서울대 정치학과 재학 중에 각종 시위를 주도해 몇 차례나 투옥됐다.
▼ 한광옥은 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 맡기로 ▼

특히 박정희 정권의 한일 국교정상화에 반대해 한일굴욕회담반대투쟁위원장으로 1964년 6·3한일회담반대운동을 주도했다. 또 자신이 회장으로 있던 서울대 연구모임인 민족주의비교연구회(민비연)를 박 정권이 반국가단체로 규정한 ‘민비연’ 사건과 1차 인민혁명당 사건에도 연루돼 옥고를 치렀고 박 전 대통령의 3선 개헌 반대운동에도 참여했다.

대구 출신에 경북고를 졸업한 김 씨가 악명 높은 중앙정보부에서 조사를 받다가 “왜 경상도 출신이 박 대통령에게 반대하느냐”고 호통 치는 김형욱 당시 중정부장에게 대들다가 직접 폭행을 당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1982년 부산 미문화원방화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무기로 감형된 후 12년간 옥살이를 했던 김현장 씨도 대통합위원으로 영입됐다. 김 씨는 석방 후에도 통일운동을 하다가 구속돼 다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김 씨는 이후 각종 강연과 저술을 통해 “주체사상은 낡은 이론이다” “미국이라면 무조건 반대하는 운동권 후배들이 반미운동 잘못 계승했다”고 말하는 등 이념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한편 ‘적진’에서 영입해온 한광옥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는 대통합위원회의 수석부위원장을 맡기로 했다. 한 전 대표의 영입에 반발했던 안대희 정치쇄신특별위원장도 이를 양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과 ‘경제민주화’를 놓고 이견을 보여온 이한구 원내대표는 “원내사령탑의 역할에 전념한다”는 명목으로 선대위 부위원장에서 빠졌다. 비박(비박근혜) 중진으로 이날 인선에서 제외된 이재오 의원이 박 후보를 도울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박근혜#선대위#소수자#과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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