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식 과거사 규명委 설치… 文, 짙어가는 친노 본색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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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당내 대선후보 경선 때 경쟁 후보들로부터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란 거센 비판에 시달렸다. 문 후보는 이런 비판을 희석하기 위해 경선캠프에 비노(비노무현) 인사들을 적극 영입하며 친노 색깔 빼기에 주력했다. 후보가 되면 탕평 인사를 통해 화합에 나서겠다고도 했다. 이런 그의 모습은 합리적이고 온건한 인물로 인식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 과거사 전방위적 공세

하지만 당 대선후보가 된 후 캠프에 모여드는 인사들의 면면이나 문 후보의 발언과 행보를 두고 정치권 일각에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편 가르기 정치’를 닮아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는 후보 선출 다음 날 첫 행선지로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만 참배했을 뿐 박정희 전 대통령 묘역은 참배하지 않았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통합을 명분으로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의 묘역을 모두 참배한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과거사를 고리로 새누리당과 박근혜 후보에 대한 전방위적인 공세에 나선 것은 참여정부 시절 노 전 대통령을 떠올리게 한다. 문 후보는 박 후보를 겨냥해 5일 선대위 산하 민주캠프 내에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치하며 유인태 의원을 위원장에 임명했다. 유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정무수석비서관을 지냈다. 문 후보는 2일에는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을 찾아 “정권교체 이후 참여정부 때 마치지 못했던 과거사 정리 작업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과거사 청산을 ‘국정 최우선 과제’로 삼고 정부 산하에 ‘친일 반(反)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와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등을 설치해 수십 년 전 일을 들추어내면서 당시 한나라당과 박근혜 대표를 거세게 몰아세웠다.

○ 대북정책은 노무현 정부 계승

문 후보 캠프에서 노 전 대통령의 색깔이 짙게 묻어나는 분야는 정책 부문이다. 4일 문 후보가 참여정부의 10·4남북정상선언 5주년 기념 토론회에서 제시한 남북 평화정책의 로드맵이 대표적이다. ‘남북경제연합’과 ‘한반도 평화구상’을 두 축으로 하는 남북 평화정책에 대한 문 후보의 애착은 남다르다. 새누리당은 이를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에서 실패한 퍼주기 대북정책의 재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문 후보는 참여정부하에서 개성공단이 실질적인 성과를 거뒀다고 평가한다. 차기 정부에선 남북 경제협력을 통일에 준할 정도로 강화해 실질적인 통일을 이뤄 나가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문 후보는 당선 후 북한에 특사를 보내 대통령 취임식에 북측 인사를 초청하고 남북기본합의서, 6·15선언, 10·4선언을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6자회담 당사국 등 국제사회의 공동 노력을 통해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안착시키겠다는 한반도 평화구상 역시 참여정부의 대북정책과 비슷하다.

‘언론과의 전쟁’이라고 할 만큼 임기 내내 언론과 싸웠던 노 전 대통령은 ‘친정부 언론’과 ‘비판 언론’으로 편을 가르고 언론의 공무원 접촉을 봉쇄하며 소송 등을 통해 기자들을 끊임없이 압박했다. 임기 말에는 정부부처 기자실을 폐쇄하며 언론에 대못을 박았다. 아직까지 문 후보가 언론에 적대적인 시각을 드러낸 경우는 없다. 5일 YTN 해직사태 4주년 행사에 참석해 “정권에 의해 언론이 장악되는 것을 막겠다”며 “방송통신위원회 등을 개혁해 언론의 공영성을 지켜내겠다”는 원론적인 수준의 언급만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역시 종합편성채널, 그중에서도 동아 조선 중앙일보 계열의 종편에는 출연하지 않고 있다.

○ 캠프의 실질적인 핵심은 친노

노 전 대통령은 친노 중심의 폐쇄적인 인사 스타일로 인해 ‘코드인사’란 비판을 많이 받았다. 문 후보는 친노에 대한 당내의 적지 않은 거부감을 의식해 경선 캠프를 구성할 때부터 노영민 우윤근 이목희 이상민 의원 등 비노 성향의 인사를 공동선거대책본부장으로 전면에 내세웠다. 후보 취임 일성으로는 계파를 아우르는 ‘용광로 선대위’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실제 선대위 구성에서 위원장급은 비노와 외부 인사를 기용해 어느 정도 탈계파의 모양새를 취했다.

하지만 캠프에서 실권을 쥐고 핵심 역할을 하는 실무진에는 친노 인사들을 대거 포진시켰다. 비서실과 민주캠프 내 기획단위는 부본부장 이하 실무라인이 대부분 친노 인사들이다. ‘3철’로 불리는 인사 중에서 이호철 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빠졌지만, 양정철 전 홍보기획비서관과 전해철 전 민정수석비서관이 각각 선대위 비서실 메시지팀장과 기획부본부장을 맡았다. 당 일각에선 “얼굴 마담만 비노이고 실권은 친노가 다 갖고 있다”란 불만이 적지 않다.

당 관계자는 “국민이 바라는 것은 ‘노무현 정부 2기’가 아닌 ‘문재인 정부 1기’”라며 “비욘드 노무현을 해야 문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문재인#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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