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전봇대’ 뽑던 정부, 다시 181건 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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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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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부 들어 꾸준히 감소하던 정부 규제가 올 상반기(1∼6월)에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이란 슬로건 아래 규제 완화를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던 정부의 초기 국정기조가 동반성장·공생발전으로 선회하면서 기업 활동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확대됐기 때문이다. 시장의 자유를 강조하는 경제 전문가들과 재계는 이미 시작된 규제 강화 움직임에 여야 대통령 후보들이 내세우는 ‘경제민주화’까지 더해져 향후 경제정책 기조가 ‘큰 정부, 강한 규제’로 돌아설 것을 우려하고 있다.

○ 용두사미로 끝난 규제 정비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의 규제등록 현황에 따르면 올 상반기 38개 정부기관에서 신설된 규제는 221건, 폐지된 규제는 40건으로 정부 규제가 181건 늘어났다. 전체 규제건수는 6월 말 현재 1만3594건으로 지난해 말보다 448개 늘어났지만 이 중 267건은 기존에 있던 규제를 뒤늦게 등록했거나, 규제 내용의 일부만 변경된 것들이다.

정부가 대대적 규제 정비에 나섰던 2009년 이후 규제가 늘어난 건 올해가 처음이다. 2009년에는 신설 규제 247건, 폐지된 규제 418건으로 전체로는 171건이 줄었으며, 2010년과 지난해에는 각각 80건과 48건의 정부 규제가 감소했다.

특히 기업 활동에 정부가 개입하는 ‘경제적 규제’가 크게 늘었다. 경제적 규제란 기업들의 시장 진출 장벽으로 작용하는 진입규제, 영업활동을 제한하는 거래규제, 가격을 통제하는 가격규제, 공산품이나 서비스의 품질과 관련한 품질규제를 통칭한 것이다.

올 상반기 경제적 규제는 80건 늘어난 데 반해 이 분야 규제의 폐지는 10건에 그쳐 전체로 보면 70건 증가했다. 현 정부는 취임 초 경제적 규제의 정비를 약속해 2009년에는 167건이 줄면서 전체 규제의 감소를 이끌었다.

기관별로는 고용노동부(―10건)와 중소기업청(―3건) 등 2개 기관만 줄었을 뿐 나머지 18개 기관의 규제는 증가했다. 특히 국토해양부는 33건으로 정부기관 중 가장 많이 늘었고 이어 금융위원회(25건), 산림청(24건), 기획재정부(17건), 공정거래위원회(15건) 순이었다.

○ 안 보이는 규제도 늘어

규제 전문가들은 최근 법이나 시행령이 개정돼 규개위에 정식으로 등록된 규제 외에 ‘행정지도’나 ‘업계자율’의 형태를 띤 ‘보이지 않는 규제’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동반성장위원회의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합의 형식을 띠고 있어 신설 규제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위반하는 대기업은 ‘동반성장지수’ 평가 등에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기업들은 사실상의 규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프랜차이즈 신규 가맹점 거래제한 등 공정위가 최근 잇따라 내놓고 있는 모범거래기준 등도 업계 자율협약 형태로 규제에 포함되지 않지만 관련 업체들은 강한 제약을 받게 된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전경련이 기업을 상대로 매년 조사하는 ‘규제개혁 체감도’가 올해 들어 현 정부 출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며 “동반성장이라는 명분 아래 규제를 통한 정부의 시장 개입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게 기업들의 불만”이라고 말했다.

○ 기업들 “규제 부작용 이미 현실화”

늘어난 규제 중에는 소비자를 속인 ‘파워 블로거’의 처벌을 강화하는 전자상거래법 개정안 등 소비자 보호, 시장질서 확립을 위한 규제도 다수 포함돼 있다. 하지만 규제 강화는 불가피하게 기업 활동을 약화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국내 기업에 집중된 규제로 외국계 기업들이 ‘반사 이익’을 챙기는 사례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 대기업 계열 업체의 공공기관 구내식당 입찰이 제한된 급식업계에서도 외국계 업체의 시장점유율 잠식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서울시 ‘120다산콜센터’ 구내식당은 대기업 입찰참여 제한으로 기존 사업자이자 국내 중견기업인 동원홈푸드와 외국계 급식업체인 아라코만 입찰에 참여해 경쟁한 끝에 아라코가 낙찰자로 선정됐다.

차기 정부에서는 규제가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주찬 광운대 행정학과 교수는 “최근 여야 정치권의 경제민주화 논쟁을 볼 때 차기 정부에서 정부규제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며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것을 넘어선 정부의 개입은 결과적으로 큰 비용을 초래하게 된다”고 말했다.

문병기 기자 weappon@donga.com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규제정비#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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