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값하는 19대 국회로]‘법대로 해야할 院구성’ 여야 멋대로 흥정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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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로 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지 16일이 지났지만 개원식조차 열지 못했다. 1988년 13대 국회 이후 지금까지 국회 임기 개시 후 개점휴업은 관례가 됐다.
15일로 19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지 16일이 지났지만 개원식조차 열지 못했다. 1988년 13대 국회 이후 지금까지 국회 임기 개시 후 개점휴업은 관례가 됐다.
벌써 24년째다. 악습이 관례로 굳어졌다. 달라질 것으로 기대했던 19대 국회도 예외가 아니다. 1988년 개원한 13대 국회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임기 시작과 함께 국회는 파행의 악순환을 반복했다. 원 구성이란 높은 벽에 막혀서다. ‘원 구성 협상 파행’은 국회 불신의 단초가 돼 ‘무노동 무임금 원칙’에 따라 국회의원들의 세비를 반납하라는 요구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 풀리지 않는 실타래

새누리당 김기현,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수석부대표는 14일 국회에서 만나 원 구성 협상을 이어갔다. 지난달 17일 처음 협상을 시작한 이래 여섯 번째 만남이었다. 이날로 국회법상 원 구성을 마쳤어야 할 시한(6월 7일)이 일주일이나 지났지만 협상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였다. 박 원내수석이 민간인 불법사찰에 대한 검찰 수사가 부실하다고 지적하자 김 원내수석은 “김대중(DJ)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도 다 그런 게(사찰이) 있었다”고 맞받아쳤다. 이에 박 원내수석은 “(당시) 불법사찰은 안 했다. 유신 때부터 (불법사찰을) 조사해야겠다”고 응수했고 김 원내수석은 “DJ 때 도청한 거 확인됐다”며 물러서지 않았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3개(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 정무위 국토해양위) 상임위원장 중 하나를 넘겨달라는 요구를 철회하면 다른 국회활동과 관련해 민주당을 적극 돕겠다”고 말했다. 핵심 상임위 세 곳을 지키는 대신 민간인 불법사찰 등 쟁점 현안에서 민주당의 국정조사 요구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민주당은 이날 △정수장학회 △방송사 파업 △4대강 사업 담합 의혹 △매쿼리(인천국제공항 관련) 특혜 의혹 △민간인 불법사찰 △박지만 씨 저축은행 연루 의혹 등 6건의 국정조사를 수용하라고 요구했다. 민주당이 대선을 앞두고 이들 사안을 정치쟁점화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한 셈이다. 새누리당으로선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조건이다.

○ 악습은 왜 관례가 됐나

원 구성 협상이 매번 꼬인 것은 국회 개원과 맞물려 여야가 원 구성 협상을 기싸움의 대상으로 삼기 때문이다. 양당 지도부는 원내 주도권을 쥐기 위해 첫 협상부터 밀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치킨게임(자동차를 마주 달리다 피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을 벌여왔다. 여기에 소수당은 원 구성 협상과 정치 현안을 연결해 더 많은 것을 얻어내려 했다.

상임위원장 선출이 가장 늦었던 14대 국회 전반기에는 지방자치단체선거 실시 시기를 놓고 여야가 대립했다. 그 결과 개원 125일 만에 원 구성을 마쳤다. 18대 국회 전반기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동으로 원 구성을 마치는 데 88일이 걸렸다. 19대 국회에서도 민주당은 각종 국정조사를 원 구성 협상의 전제조건으로 내걸고 있다.

원 구성 협상에 각종 정치 현안이 끼어들면서 13대 국회부터 18대 국회까지 원 구성에 걸린 시간은 평균 44일이다. 특히 임기 개시 직후 전반기 원 구성에는 평균 54일이 걸렸다. 국회의장단 선출은 임기 개시 7일 후, 상임위 구성은 9일 이내에 하도록 돼 있는 국회법을 상시적으로 어긴 것이다.

국회입법조사처 전진영 입법조사관은 “국회의 기본적 업무수행을 위해 틀을 갖추는 원 구성을 정치 협상의 대상이나 수단으로 삼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 실타래 풀 묘수는 없나

13대 국회 이전인 6대 국회부터 12대 국회까지는 원 구성 협상 자체가 없었다. 다수당이 모든 상임위원장직을 독식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재도 다수당이 상임위원장 전체를 차지한다. 이른바 승자독식(winner takes all) 방식이다.

우리나라는 13대 국회 당시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원내교섭단체가 협상을 통해 상임위원장을 배분하는 관례가 만들어졌다. 문제는 관례만 있지 국회법이나 국회규칙 어디에도 관련 규정이 없다는 데 있다. 지금까지 여당은 국회운영위 행정안전위 국방위 정보위 등 4개 상임위를 단 한 번도 야당에 넘겨준 적이 없다는 정도만 관례로 남아 있는 것이다.

18대 전반기 국회의장을 지낸 김형오 전 의장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상임위 배분과 관련해 매우 구체적인 규정을 국회규칙에 담아야 한다”며 “상임위를 중요도에 따라 구분한 뒤 의석수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상임위를 사전에 정해놓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7선 의원을 지낸 조순형 전 의원은 “원 구성 협상은 1차적으로 국회 운영을 책임진 다수당이 양보를 통해 풀 수밖에 없다”며 “다만 현재 다른 상임위 위에 ‘상원’처럼 돼 있는 법제사법위의 권한을 원래대로 자구 심사로 한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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