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경 ‘변절자 폭언’에… 탈북 학생들 충격의 나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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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같은 北 탈출했는데 내가 정말 나쁜 건가요”
“北말투 쓰면 손가락질 겁나 버스-지하철에서도 말 안해”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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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경 의원이 탈북자들에게 폭언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모르게 ‘악!’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가시로 마구 찔린 것처럼 가슴이 너무 아팠어요. 지옥 같은 북한을 탈출한 것이 정말 변절자로 욕먹어야 하는 일인가요? 나는 정말 나쁜 사람일까요?”(탈북자 강용필 씨·가명·26)

탈북한 지 2년 이내의 10, 20대 60여 명이 다니는 서울 중구 남산 아래 있는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 ‘여명학교’는 최근 수업 진행이 어려울 정도의 침울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민주통합당 임수경 의원이 3일 “근본도 없는 탈북자 ××들, 변절자 ××들”이라고 폭언을 퍼부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탈북한 지 얼마 안 되는 10, 20대 탈북자들은 큰 정신적 충격으로 괴로워하고 있다.

8일 동아일보 취재진이 이 학교에서 만난 학생들 상당수는 무거운 분위기 속에 의기소침한 모습이었다. 복도를 지나치던 학생들은 외부인과 시선을 맞추는 것조차 부담스러운 듯 기자의 눈을 피했다. 이 학교 조명숙 교감은 “자유를 찾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을 정도로 밝았던 학교 분위기가 (임 의원의 발언 이후) 며칠 만에 완전히 달라졌다”며 “남한 사회에 적응해가던 학생들이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면서 극도로 예민해져 있다”고 전했다. 그는 “임 의원의 폭언 사실이 보도된 직후인 4일 학생들이 등교하자마자 ‘선생님, 남한 사람들 모두가 탈북자를 변절자라고 생각하나요?’ ‘우리가 탈북한 게 잘못한 거예요?’라는 질문을 쏟아냈다”고 했다. 이어 “학생들이 학교에서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있고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북한 억양을 듣고 변절자라고 손가락질할까 봐 아예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며 “조금씩 마음을 열던 아이들이 주눅 들어 있는 걸 보니 마음이 정말 아프다”고 안타까워했다.

어렵게 입을 연 탈북 학생들은 임 의원에 대한 배신감에 울분을 터뜨렸다. 지난해 5월 탈북한 한나현(가명·23·여) 씨는 “진짜 내가 변절자인 것만 같다. 임 의원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싶다”는 말만 반복했다. 임 의원을 우상으로 여겨왔던 김은혜(가명·20·여) 씨가 받은 충격은 더 컸다.

[채널A 영상] 임수경“탈북자 XX들이 와서 대한민국 국회의원한테 △△냐”

▼ “우상이었던 임수경 의원이… 믿을 수 없어

北에서 죽지 뭐하러 왔냐고 따귀 때린 셈”

2년 전 탈북한 김 씨는 1989년 6월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대표로 방북해 ‘통일의 꽃’으로 불렸던 임 의원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자라며 임 의원을 선망의 대상으로 여겼다고 한다. 김 씨는 “북한 정부에서나 할 법한 폭언을 한 사람이 임 의원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다”고 했다.

지난해 1월 탈북한 김민우(가명·26) 씨 역시 “사람답게 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내려왔는데 변절자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임 의원은 탈북자들에게 ‘거기서 그냥 죽지 뭐 하러 내려왔느냐’고 다그친 것과 다를 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 교감도 “탈북자들이 신적인 존재로까지 생각했던 사람이 도리어 탈북자들에게 따귀를 때린 격”이라며 분개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이 받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사람은 임 의원뿐이라고 보고 그의 진심어린 사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 학교 이흥훈 교장은 “중요한 건 탈북자에게 ‘탈북이 나쁜 게 아니라 더 나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며 “임 의원이 진심으로 사과하고 상처받은 탈북자들을 끌어안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임수경#변절자#탈북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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