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둔 여야, 법치훼손 논란 이어 ‘가격개입’ 정책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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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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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공급 법칙’ 무시한 법안 추진
票의 논리에 흔들리는 시장 원리

4월 총선을 앞둔 여야 정치권이 카드 수수료율과 전월세 가격을 제한하는 초유의 ‘가격 개입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예금자보호 대상이 아닌 5000만 원 초과 예금자와 후순위채 투자자의 피해를 보장하는 저축은행 특별법이 법치주의의 근간을 훼손한다면 가격 개입 정책은 ‘가격은 수요와 공급이 형성되는 시장(市場)에서 결정된다’는 시장경제의 기본원리를 무너뜨리는 행위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표심을 노린 정치권이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법안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가운데 관련 업계는 물론이고 해당 경제정책을 책임지는 정부마저 “위헌 소지가 있는 독소조항”이라고 반발하고 있어 15일 국회 법사위와 16일 본회의를 통과할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 카드사들 “시장경제 위배”


통상 정부는 국회의원들이 의원입법 형태로 추진하는 정책에 이견이 있으면 비공개로 의견을 내면서 절충안을 찾았다. 이번처럼 공개적으로 성명 형태로 ‘위헌 소지’를 거론하면서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어느 법을 뒤져봐도 정부가 가격(수수료율)을 정하게 한 사례는 없다”며 “시장원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위헌 소지마저 다분하다”고 밝혔다. 자본시장법에서 펀드판매 수수료율 상한선을 정하는 등 가격에 제한을 둔 예는 있지만 가격 자체는 제한된 범위에서 모두 시장 자율로 정해진다는 것이다.

당장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받는 카드사 사장들은 여신전문업법 개정안의 맹점을 성토했다. 최기의 KB국민카드 사장은 12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공급과 수요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시장의 원칙인데, 정부가 정해준 대로 수수료를 정하는 것은 시장 논리에 맞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KB국민카드는 법무법인 김앤장에 개정안의 법적 타당성을 의뢰한 결과 “수수료율을 특정해 자율적인 가격 결정을 금지하는 것은 행복추구권, 재산권, 직업의 자유 등을 침해한다”는 회신을 받았다고 밝혔다. 기본권을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다는 뜻이다. 정태영 현대카드 사장, 이재우 신한카드 사장 등도 30여 년간 바뀌지 않은 수수료 체계를 바꿀 필요는 있지만 정부가 직접 요율을 정하는 것은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행위라는 취지에 공감하며 반대하고 있다.

금융연구원 이재연 선임연구위원은 “카드 수수료 문제에 원칙적으로 정부가 개입하는 것에 대해선 찬성하지만, 정부가 수수료율을 정하도록 법으로 못을 박아놓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국회가 수수료율 문제에 대해 얼마나 많이 고민하고 법안을 만들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말했다.

○ 전월세 가격까지 제한

새누리당(옛 한나라당) 총선공약개발단 산하 주거안정팀은 최근 전월세 가격을 지역에 따라 한시적으로 제한할 수 있게 하는 ‘전월세 상한제’를 4·11총선 공약으로 당에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특정 지역 전월세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 수준으로 높아지면 ‘주택임대차 특별신고 지역’으로 지정해 전면 실태조사를 하고, 3배 이상 수준이 되면 ‘주택임대차 특별관리 지역’으로 지정해 전월세 상한선을 정한다는 구상이다. 집주인이 상한선을 넘겨 임대료를 올려 받을 경우 세입자가 초과분을 돌려받을 수 있도록 ‘부당이득 반환청구권’도 인정한다는 방침이다.

이런 전월세 상한제는 아직 공약으로 채택되진 않았지만 민주통합당의 전신인 민주당이 줄곧 요구하던 가격 상한제를 받아들이는 모양새다. 지난해 한나라당은 비슷한 내용의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추진하다 국토해양부의 반대로 중단했지만 이번엔 법률 개정이 아니라 당의 ‘공약’인 만큼 당정 협의가 필요 없어 채택될 개연성이 높은 상황이다.

이에 대해 부동산 전문가들은 “시장원리에 맞지 않아 실패한 정책을 답습하는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뉴욕 시가 ‘임대료 규제법’을 만들어 월세 인상을 제한하고, 세입자 강제 퇴거를 금지한 이후 임대주택 공급이 감소해 신규 세입자들은 돈이 있어도 빈집을 찾기 어려워지고 도심이 슬럼화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성대 이용만 교수(부동산학)는 “가격 상한에 묶여 임대수익이 나지 않으면 집주인들이 공급을 줄여 임대주택이 부족해질 수 있고, ‘제값을 못 받는다’는 생각에 관리를 소홀히 해 주거환경이 나빠질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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