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샌드위치’ 70년대生 X세대 갈 곳이 없다

  • Array
  • 입력 2012년 2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정가 선점한 386에 눌리고… 떠오르는 ‘앵그리 영 맨’ 20대에 치이고…

민주통합당 청년 비례대표 선출에 참가한 후보자(25∼35세)들이 한명숙 대표와 서울 마포구 홍익대 앞 클럽에서 록 파티를 즐긴 5일 오후. 이 시간 국회에선 1970년대에 태어난 ‘X세대’ 당원과 총선 예비후보 10여 명이 외롭게 기자회견을 하고 있었다. “1970년대생에 지역구 공천의 10% 이상을 할당하라”는 내용이었다.

대조적인 이 광경에 ‘정치에서 낀 세대’인 X세대의 비극이 숨어 있다. X세대는 1970년대에 태어나 1990년대 초중반에 ‘나는 나’를 외쳤던 세대로,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부정하고 탈(脫)정치, 감성을 우선시했다. 지금도 대중문화 영역에선 주요 소비자다.

그러나 정치권 내에선 30대 중반∼40대 초반의 X세대가 철저하게 주변부에 머물고 있다. 선배인 386세대가 30대에 화려하게 정치권에 등장한 것과는 딴판이다. 정당들의 눈길은 X세대를 건너뛰어 청년 실업, 등록금 문제로 사회적 불만이 쌓여 정치적으로 상품가치가 높아진 20대를 향한다. 민주당의 청년 비례대표 선발도 20대의 표심을 노린 것이다. 새누리당이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한 이준석 씨는 27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한 총선 예비후보 중 X세대의 비율은 4%에 불과하다. 민주당 의원 중 X세대 정치인은 없다. 반면 386세대인 김민석 전 의원은 32세(1996년)에, 임종석 민주당 사무총장은 34세(2000년)에 의원이 됐다.

국회 관계자는 “정치권에서 X세대는 기성 정치인의 보조 툴(tool)로 취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X세대보다 10년쯤 선배인 386 출신의 한 민주당 정치인은 5일 1970년대생 예비후보들이 기자회견을 연다는 소식에 “쓸데없는 일”이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386 정치인 사이에선 “X세대는 대학 다닐 때 시대적 상황에 대한 고민도 없었고 사회참여도 제대로 안 했으면서 이제 와서 정치 열매를 따먹겠다는 것이냐”는 목소리도 들린다.

X세대의 대학 시절인 1990년대엔 386세대 때와 같은 독재정권은 사라졌다. 대학가에 ‘왜 운동을 해야 하는가’라는 혼란이 팽배했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상징되는 대중문화가 X세대의 감성을 파고들었다. 386세대가 내세웠던 ‘집단’보다 ‘나’를 앞세우는 개인주의가 X세대의 머릿속을 지배했다. 이들이 대학을 졸업할 즈음 외환위기는 X세대를 취업의 무한 경쟁 속으로 내몰았다.

386세대는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 같은 거물들이 챙겨준 측면도 있다. 그 덕분에 386 출신들은 대학을 졸업한 뒤 자연스럽게 현실 정치에 입성할 수 있었다. 전대협 같은 학생회 조직으로 형성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차례로 정치에 발을 들였다.

X세대는 달랐다. 한 X세대 보좌관은 “386들이 해병대 전우회처럼 몰려다닐 때 우리는 파편화됐다”고 말했다. X세대가 정치에 뛰어든 과정도 개인적 선택이 대부분이었다. 민주당의 ‘70년대생 당원모임’ 대표인 서보건 씨는 “X세대가 386세대와 달리 정치적 능력을 검증받지 못했다고 몰아세우는 건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X세대를 정치권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민주당 박지원 최고위원은 최근 “386이 성장해 486이 됐지만 그 10년간 젊은 피를 수혈하지 않아 민주당 스스로 늙어졌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정당이 이벤트성 행사로 20대의 주목을 끌거나 명망가를 영입하기보다는 X세대 정치인들이 성장할 인큐베이터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