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SNS ‘입’ 묶는 20세기 선거법 바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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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1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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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가 뒤흔드는 선거판… 전문가들 제도 개선 5대 가이드라인 제시

‘돈은 묶고 입은 푼다.’ 공직선거법의 대원칙이다. 돈이 없는 사람들도 각종 선거에 출마해 자신의 메시지로 유권자의 선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발달은 이런 공직선거법의 정신을 구현할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정당정치의 위기 속에서 SNS가 정치 참여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나온다. 정치 불신 속에 계속 추락하던 투표율이 지난해 6·2 지방선거 이후 상승곡선을 그리는 데 SNS가 큰 기여를 했다. 정치 영역에서 처음으로 ‘양방향 소통구조’가 가능하도록 만든 것도 SNS다.

SNS 확산을 놓고 논란도 있다. SNS를 통한 정치 참여의 경계가 모호한 상태에서 젊은 층에 어필하는 특정 인사들의 감성적 호소가 선거에 과도한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비판도 있다. 반면 이를 현재 선거관리위원회가 하듯이 규제만 하는 것도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 취재 결과 전문가들은 SNS 확산에 따른 현행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방향에 대한 5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1] 선거운동 기간 너무 짧아 되레 과열… SNS엔 족쇄 풀어야

현행 공직선거법은 선거일을 앞두고 시기별로 위반사항을 규정하고 있다. 선거일 180일 전까지는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선거일 전 180일부터 선거운동 기간 전까지는 예비후보자를 제외하곤 선거운동은 물론이고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활동’도 모두 금지된다. 일반 유권자의 정치적 의사표현은 선거운동 기간에만 가능하다. 대통령선거의 운동 기간은 23일,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는 14일. 따라서 나머지 기간 SNS에서의 정치적 의사 표현은 그 수위에 따라 단속 대상이 될 수 있다.

선거법이 선거운동의 허용 기간을 구분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선거의 조기 과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SNS는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선거운동 기간을 제한한 선거법의 ‘목적’과 충돌한다. SNS는 나아가 기성 정치권에 혐오감을 갖고 있는 젊은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를 유도할 수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올 4월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선거운동의 기간 제한을 폐지하자는 내용의 공직선거법 개정의견을 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울러 10·26 재·보궐선거에서 나타났듯이 SNS를 통한 확인되지 않은 정보나 주장의 확산은 명예훼손 등 또 다른 법적 논란을 낳고 있다. SNS 선거운동의 장·단점을 감안해 SNS 시대에 맞게 선거운동 기한을 새로 규정해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2] 후보자와 쌍방향 소통 가능하게 유권자도 선거운동 허용

SNS에 맞는 선거운동 기간을 정해도 문제는 남는다. 선거운동의 주체는 후보자이지 유권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인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상시로 선거운동을 할 수 있지만 이 홈페이지를 방문한 유권자가 후보를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댓글을 달면 선거법에 저촉된다.

기존의 홈페이지는 정치인들이 만든 공간으로 유권자들을 끌어들이는 방식이지만 지금은 유권자들이 자발적으로 콘텐츠를 만들면 이 공간을 후보자들이 찾아가기도 한다. SNS를 통해 유권자들이 정치의 객체가 아니라 주체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많은 전문가는 인터넷 토론 게시판과 달리 사실상 실명으로 의견이 개진되는 트위터의 ‘자정 기능’을 이유로 SNS 선거운동을 확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선관위도 SNS상 유권자의 선거운동을 확대하는 데 공감한다. 세계적으로 SNS에서의 선거운동을 규제하는 나라는 거의 없고 SNS 규제 자체도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로 10·26 재·보선에서 선관위가 투표장 인증샷을 규제하자 누리꾼들이 얼굴을 가리고 인증샷을 올리는 등 선거법을 사실상 무력화했다.
[3] 불법 판단기준 세분화… 정치적 의사표현 자유 확대해야

현행 선거법의 SNS 관련 핵심 논란 중 하나는 SNS를 활용한 불법 선거운동에 대한 규제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10·26 재·보선을 앞두고 선관위는 SNS상 불법 선거운동과 관련해 ‘표현의 정도와 목적성’이라는, 애매하고 불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후보자에 대한 단순 지지 여부를 밝히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상대 후보에 대한 악의적 비방이나 허위 사실 유포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선거법상 ‘악의적 비방’의 유형을 규정한 조항은 없다.

전문가들은 현행 선거법으로는 SNS상 악의적 비방과 정치적 비판을 구분하기 어려운 만큼 문제가 될 정치적 의사 표현의 유형을 세분하거나 선거법이 아닌 형법 등으로 규제 법안을 단일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회 입법조사처 조희정 입법조사관(정치학 박사)은 “악의적 표현은 형법이나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을 통해서도 처벌할 수 있다”며 “선거법은 SNS 관련 규제를 완화해 정치적 의사 표현의 경계를 확장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4] 선거법상 아직도 e메일로 분류… 새로운 미디어 규정 필요

소셜미디어인 SNS에 대해 선거법 차원에서 좀 더 명확한 정의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선관위는 트위터를 ‘인터넷 홈페이지와 e메일이 융합된 구조로서 선거법상 e메일에 관한 규정이 적용되어야 한다’고 유권해석하고 있다. 트위터를 e메일이 아니라 제3의 매체로 해석하면 선거운동 기간에도 트위터를 활용한 선거운동이 금지되기 때문에 더 큰 사회적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게 선관위의 논리다.

동시에 사용자 개인의 ‘사적 영역’과 불특정 다수인 팔로어가 열람할 수 있는 ‘공적 영역’이 공존하는 트위터의 특성을 감안해 법적 정의를 내리는 것도 필요하다. 10·26 재·보선 기간 중 검찰이 SNS상에서의 악의적 비판에 대해 수사 가능성을 내비치자 트위터 사용자들은 “‘모바일 일기장’인 트위터에서 남 욕했다고 수사 받는 게 말이 되느냐” “집에서 욕해도 구속되느냐”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아직 소셜미디어의 ‘사적 영역’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08년 2월 대법원은 초기 소셜미디어인 인터넷 블로그에서 상대방과 일대일로 ‘비밀 대화’를 하면서 제3자를 비방해도 ‘명예훼손 혐의가 인정될 수 있다’고 판결한 바 있다. 대법원은 당시 판결에서 “한 사람에게만 알렸다 하더라도 얘기를 들은 상대방이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전파할 가능성이 있다면 명예훼손죄의 구성 요건인 공연성(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을 충족한다”고 밝혔다.
[5] 선관위에 전담조직 없어 혼선… 법적 견제장치 만들어야

SNS 선거운동이 확산되면서 각종 사회적 논란을 낳고 있지만 주무 행정기관인 선관위의 관련 조직과 인력은 미흡하다. 현재 선관위 내 조사2과와 사이버조사팀이 SNS 선거운동에 대한 법 제도와 불법 활동 감시를 맡고 있지만 선거기간 중 한국에서만 하루 최대 수십만 건의 트윗이 발생하는 만큼 실효성 있는 대처는 불가능한 실정이다.

선관위 관계자는 “사이버조사팀이 선거운동 기간 중 주요 트위터 사용자에 대한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지만 특정 글이 선거법에 저촉되더라도 퍼나르기(RT·리트윗) 기능을 통해 순식간에 전 세계로 확산됐다”며 사실상 손을 쓰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국내 인터넷 포털의 블로그에 올려진 글이 선거법을 위반하면 해당 업체에 삭제 요청을 할 수 있지만 트위터 등 주요 SNS는 대부분 해외에 서버가 있어 특정 글이 국내 선거법에 저촉되더라도 삭제 요청을 하기 어렵다.

결국 소셜미디어를 통한 양질의 정치적 소통을 담보하기 위해서라도 선관위 차원의 SNS 전담 조직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재명 기자 egija@donga.com  
이승헌 기자 dd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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