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다피의 마지막 나날들]5평 남짓 창고바닥, 허름한 담요에 덮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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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특파원, 미스라타의 카다피 시신 앞에 서다

“카다피 시신 보자” 장사진 22일 리비아 미스라타의 과도정부군 사령부 기지 내에 보관돼 있는 카다피의 시신을 보려는 사람들이 기지 정문 앞 도로에 길게 줄을 서 있다. 카다피 시신은 전날인 21일까지는 시내 정육점 냉동고에 놓여진 채 공개됐었다. 미스라타=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카다피 시신 보자” 장사진 22일 리비아 미스라타의 과도정부군 사령부 기지 내에 보관돼 있는 카다피의 시신을 보려는 사람들이 기지 정문 앞 도로에 길게 줄을 서 있다. 카다피 시신은 전날인 21일까지는 시내 정육점 냉동고에 놓여진 채 공개됐었다. 미스라타=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리비아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의 시체에 다가가는 순간 만감이 교차했다. 먼저 시체를 보고 나오는 병사들과 리비아인들은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고, 얼굴을 찌푸리며 고개를 흔들기도 했다. 한 병사가 일회용 마스크를 줬지만 쓰지 않고 다가갔다.

22일(현지 시간) 기자가 카다피의 시신을 보러 간 곳은 내전의 최대 격전지였던 미스라타 중심가에서 남쪽으로 10km 정도 떨어진 과도정부군 사령부 기지 내 1층 건물이었다. 이에 앞서 21일 상의가 적나라하게 벗겨진 시체 동영상이 공개된 옛 시장 정육점의 냉동저장고와는 다른 장소였다. 넷째 아들 무타심과 아부바크르 유니스 자브르 전 국방장관 등 3명의 시체가 모두 합쳐지면서 옮긴 것이다. 21일 카다피의 시신이 정육점 냉동고에 방치된 채 공개되자 카다피 출신 부족이 “비윤리적인 처사”라며 강력히 반발하는 등 논란을 불러일으켰었다.

기지 정문 밖에는 병사와 일반인이 카다피의 시신을 보기 위해 100m 넘게 줄을 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기자다”라고 말하자 경비병은 “지휘본부 건물로 가서 허가증을 받아서 가라”고 말했다. 사령부 관계자는 허가증을 써주며 “한국이라니, 멀리서도 왔다. 그런데 그런 참혹한 모습을 꼭 볼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사령부 기지는 지휘본부가 포함된 남부본부, 서부본부, 동부본부로 구성돼 있는데 카다피 시체는 서부본부의 부속 건물에 있었다.

카다피의 시신은 1층짜리 콘크리트 건물 내 5, 6평 남짓한 흰색 창고방의 바닥에 놓여 있었다. 별도의 냉동시설이나 에어컨은 눈에 띄지 않았지만 건물 내부는 서늘했다. 건물 입구 바로 옆에 있는 문으로 들어서는 순간 형용하기 어려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시체가 부패되면서 나는 냄새인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다.

등이 켜져 있긴 하지만 어두운 직사각형 공간에 시체 3구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문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시체는 눈을 뜬 채였다. 처음에는 안면만 드러난 그가 카다피인 줄 알았으나 조금 뒤 가장 안쪽에 누운 카다피의 시신을 확인하고는 문 앞쪽 시체가 무타심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브르 전 장관의 시체는 두 부자 사이에 놓여 있었다.

카다피의 시체는 얇은 노란색 1인용 매트리스 위에 있었고, 시체와 매트리스 사이에는 피 묻은 비닐 장판이 깔려 있었다. 총상이 선명한 왼쪽 어깨만 드러나 있고 꽃무늬가 있는 두꺼운 감색 담요가 몸에 대충 덮여 있었다. 기자와 함께 들어와 있던 한 리비아인은 휴대전화 카메라를 카다피의 얼굴 앞에 대고 연신 버튼을 눌렀다.
▼ 부검醫 “사인은 머리 총상”… 친척에 시신 넘겨줄듯 ▼


무타심의 시체는 눈을 뜨고 입을 조금 벌린 상태였다. 이마에는 타박상처럼 보이는 상처가 있었다. 바닥에는 매트리스도 없는 상태였다. 아버지와 불과 1m도 되지 않는 거리였다.

바깥으로 나오니 일부 병사는 저장소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고 리비아인 2명이 손을 들고 “알라후 아크바르(신은 위대하다)”를 외쳤다. 카다피가 아무리 비정한 독재자였더라도 시체를 이렇게 마구 취급해도 되는 건지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죽은 지 24시간 내에 시체를 깨끗이 씻어 흰색 천으로 감싸는 의식을 치른 뒤 매장하게 돼 있는 이슬람 풍습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차가운 바닥에 내팽개쳐진 시체 3구를 지켜본 시간은 불과 2분 정도였지만 독재자 부자(父子)의 비참한 마지막은 깊은 충격과 오랜 울림을 던졌다.

과도국가위원회(NTC)의 아흐메드 지브릴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카다피의 시체 문제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시신을 친척에게 인도하는 방향으로 결론이 난 것으로 보인다”며 “늦어도 며칠 안에 시체를 넘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외로 도피한 카다피의 부인 사피아 파르카시 등 가족도 시체를 고향 수르트의 같은 부족 친척이 인수하길 바란다는 뜻을 전했다. 카다피는 숨지기 사흘 전에 자신이 죽으면 고향 수르트의 가족묘에 묻어 달라는 자필 유서를 3명에게 전달했다고 카다피 추종자들의 웹사이트인 ‘세븐 데이스 뉴스’가 23일 전했다.

이종훈 특파원
이종훈 특파원
한편 AP통신은 22일 밤부터 23일 사이 카다피의 시체를 부검한 법의학자인 오트만 알진타니 박사가 “카다피는 머리에 입은 총상으로 사망한 것이 확실하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이종훈 특파원 taylor55@donga.com


▲동영상=데일리메일, “17세 소년이 카다피 황금권총 빼앗아 쏴죽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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